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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석간신문을 펼쳐 든 한 선배가 푸념처럼 말했다. 공직자가 일정한 수준 이상의 고위직에 오르게 되면 아주 의미심장하고 특별한 결단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를 테면 금전과 향응의 유혹 속에서도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지키고 일신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인생의 목표와 철학을 재설정하는 수준의 ‘청렴선언’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공직자가 연루된 사건을 뜯어보면 스스로 조직적 주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부지불식 간에 수렁으로 빠져들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경우 또한 드물지 않다. 한순간의 실수가 일생의 명예를 잃게 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무소불위의 실권을 행사하던 인사들이 줄지어 추풍낙엽처럼 날아가는 살풍경이 최근 관가의 모습이다.

이 같은 사건이 오늘날에 국한된 일이 아니지만 고위공직자의 험한 말로(末路)를 유독 자주 접하는 요즘이다. 웬만한 중대 결단과 자기 경계, 근신의 자세를 갖지 않고는 지뢰밭과 같은 유혹에서 무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날 석간신문에는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강원도출신 고위공직자의 뇌물스캔들 연루설이 대서특필됐다. 선배의 말에는 공직자의 참 모습이 실종돼 가는 안타까운 세태와 지역출신 인재의 앞날에 대한 염려가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는 듯했다.

고위직에 오를수록 권력과 명예가 커지지만 그 만큼 금전의 유혹과 정쟁의 소용돌이에 노출되는 것이 공직자다. 가진 자의 사회적 의무를 실천한 표상으로 꼽히는 경주 최부잣집에는 6대 가훈 중에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말라’는 대목이 있는데, 고위공직자가 직분과 일신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최근 법정스님은 변양균·신정아 사건에 불교계가 연루된 것과 관련 ‘수행자가 돈과 명예를 추구하면 그는 불자(佛子)가 아니라 가사(袈裟) 입은 도둑’이라며 구도자의 본분을 지키라고 질타했다. 지난 93년 타계한 성철 큰 스님은 생전에 ‘수행자가 신도에게 돈을 받는 것은 날아오는 화살을 받는 격(受施如箭)’이라고 호되게 가르쳤다. 구도자도, 고위공직자도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그 평범한 일이 말처럼 쉽지않은 모양이다.

김상수 논설위원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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