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대 언론관계는 역대 정부 가운데 최악이다. 정부 각 부처는 기자들에게 방을 빼라는 통첩을 내렸고, 이 엄동에 기자들은 줄줄이 보따리를 싸고 있다. 정부와 언론은 기본적으로 긴장관계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는 말이 양자의 관계를 잘 설명해 준다. 숙명적인 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적지 않은 문제가 파생되는 것 같다.

정부와 언론 사이에 적당한 불화와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 나쁠 것 없다. 정부와 언론이 지금 상식이 수용하는 적정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 지켜보는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미국의 애리 플라이셔 전 백악관 대변인은 “정부는 정책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공개하지 않으려 하는 반면, 언론은 하늘아래 모든 것을 다 드러내려는 속성을 가졌다”고 말한 바 있다. 불필요한 간섭이나 참견을 듣는다고 생각하면 언론은 성가시고 귀챦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 칼 로브는 ‘언론은 영원한 가시가 되는 것을 자기의 역할로 생각한다’고 가시 돋친 말을 했고, 재임기간 대 이라크정책에 대해 언론의 비판에 시달려 온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영국 언론은 사냥감을 찾는 야수같다’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험한 말을 쏟아내면서도 ‘권력이 싫어하는 것을 쓰는 것이 언론’이라는 그 본원적인 역할을 부정 않았다.

바로 정부와 언론이 형성하고 있는 숙명적 대치전선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공보관(公報官)’이다. 정부부처의 공보관 직제는 2005년 직제 개편으로 35년 만에 공식적으로는 폐지됐지만 정부정책을 언론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파해야 하는 기본 역할이 소멸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각 부처마다 다양한 형태의 공보팀을 두고 있는데 최근 강원도 출신 인사들이 중앙부처의 공보책임자로 발탁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날선 대치 국면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에 강원인 특유의 품성과 자질이 잘 어울린 때문일까. 다시 애리 플라이셔 전 백악관 대변인의 말을 들어보면 이해가 될 듯도 하다. 첫째 진실을 말하라, 둘째 창의적인 방식을 찾으라, 셋째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 그가 현직을 떠나면서 남긴 ‘대 언론지침’이다. 김상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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