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A G 래프리는 세계적인 생활용품 회사 ‘P&G’의 최고경영자가 됐다. 그러나 거대 기업의 사령탑에 올랐다는 기쁨도 잠시, 회사의 주가는 떨어지고 여기 저기서 비방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직원들과 대화를 통해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로 했고 그 곳이 구내식당이든 강당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려 하기보다는 늘 직원들의 말을 경청하는 입장에 섰다. 대화의 3분의 2는 상대의 의견을 듣는 데 할애 하겠다는 원칙을 지켰는데, 그의 이 같은 전략은 차츰 반대자들의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최고경영자로서의 입지를 확보하는 데 주효했다. 남의 말을 먼저 듣고 상대의 입장을 헤아린 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얼른 보면 수세적인 자세 같지만 정작 더 없이 실속있는 태도였다. 먼저 자신을 낮춰 상대를 배려하는 인상을 줌으로써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상대방의 생각과 심리상태를 미리 파악하게 돼 말로 인한 실수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의 빚을 갚는가하면 말 한마디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도 한다.

말의 조화요, 말의 요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딱 맞는 말만 하면서 살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한번 내뱉은 말은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난감한 상황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 많은 지도층과 거물 정치인들이 말 한마디 때문에 급전직하의 곤경에 빠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이른바 ‘설화(舌禍)’다. 대선정국이 무르익어 가는 지금, 나라 전체가 온통 말의 홍수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여야 각 정당과 정파에서 연일 쏟아내는 정제되지 않는 거친 말들이 판을 친다. 한결같이 나를 치장하고 상대를 헐뜯는 내용이다. 막말 경연을 통해 대권을 따 내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잠시 공세를 멈추고 노자(老子)의 이런 대목을 한번 음미해 보시라. “백성들의 생명을 보전해 주면 모두가 뒤따르고/무력과 속임술로 통치하면 업신여겨 모욕한다/공을 이뤄 성사되어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행동을 신중히 하고 말이 적으면 천하가 칭송한다” 김상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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