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강릉 태생의 시인 김동명(金東鳴) 선생의 바둑 예찬은 남달랐다. 그는 ‘삼락론(三樂論)’이라는 글에서 “바둑이 오락문화의 최고봉임은 두 말할 것도 없으나 그것은 산 병서(兵書)요, 산 수학(數學)이요, 산 처세훈(處世訓)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오락 이상의 학문적 가치를 지녔다”고 했다. 그는 또 “정말 명기(名棋)는 인격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도덕과도 통하고 새 법칙의 발견이 기사(棋士)의 최고의 명예일진대 그것은 또 과학과도 일맥이 닿아 있다”라고 극찬했다.

바둑은 기량과 품격에 따라 초단에서 9단까지 아홉 단계로 품위가 나뉘는데, 각각의 별칭이 있다. 이른바 ‘위기구품(圍棋九品)’이다. 초단은 ‘수졸(守拙)’이라 부르는데 겨우 자기 집이나 지키는 정도의 초년생을 뜻한다. 2단은 ‘약우(若愚)’로 약간의 지모(智謀)가 있으나 여전히 어리석음을 벗지 못한 상태다. 3단은 막 초심자의 티를 벗고 싸움에 힘이 붙기 시작한다해서 ‘투력(鬪力)’이다.

4단은 ‘소교(小巧)’로 미약하나마 기교를 부릴 줄 아는 때다. 5단은 ‘용지(用智)’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큰 이득을 위해 작은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단계다. 6단이 되면 비로소 바둑의 심오한 세계를 알게 된다해서 ‘통유(通幽)’다. 7단은 기술적인 이치를 터득하고 큰 승부에 임해서도 마음의 평정을 지킬 수 있는 단계로 ‘구체(具體)’라 했다.

여기서부터는 이미 기(技)의 단계를 초월하는 경지다. 8단은 ‘좌조(座照)’라 칭했는데 이미 앉아서도 훤히 반상(盤上)의 조화를 꿰뚫을 수 있는 높은 경지다. 9단은 기사에게 내리는 최고의 품위로 이미 승부까지 초월해 신의 경지로 들어선다 해서 ‘입신(入神)’이다. 그러나 반상에서 연출되는 천변만화의 승부세계는 이 품위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양이다.

지난 1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우리나라의 한상훈 초단이 세계적인 고수(4∼9단)들을 잇따라 격파하고 초단으로서는 프로바둑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 결승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한 초단은 내년 2월 이세돌 9단과 우승상금 2억5000만원이 걸린 결승 3번기를 벌인다. 수졸과 입신의 대국자가 벌이게 될 변화무쌍한 대회전이 서둘러 기다려진다.

김상수 논설위원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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