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는 ‘중정난제(重政難濟)’라고 했다. 정치를 강화할수록 세상은 더욱 다스리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정치의 역설이다. 가능하면 정치색을 빼고, 정치의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은 정치라는 이야기다. 정치는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고, 치세(治世)의 궁극은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이다. 백성의 뜻과 형편을 제대로 살피는 것은 그 전제가 돼야 함은 물론이다.

바야흐로 정치가 풍미하는 계절, 노자를 음미해 볼 만하다. “窮饑困餓伴多租(궁기곤아반다조)/ 國難家離侶有踰(국난가리려유유)/ 易死輕生君貴命(이사경생군귀명)/ 心虛欲靜主崇愚(심허욕정주숭우)” 거듭 말하자면 “가난하여 굶주리는 것은 많은 세금과 더불어 생기고/ 나라와 집안이 어려운 것은/ 지나치게 하는 정치와 동반한다/ 백성이 생사를 가벼이 여기는 것은/ 임금이 자기 목숨만 귀중히 여기기 때문이고/ 백성이 욕심이 없다는 것은/ 임금이 순박함을 숭상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아무리 이상과 현실이 다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정치판은 그 지향을 의심받고 있다. 물론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은 이미 오래전 정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기로 작심한 듯 이런 말을 하기는 했다. 정치 언어란 거짓말을 진실처럼 들리게 하고 나쁜 일을 존경하도록 꾸미는 것이라고 말이다.

제17대 대통령선거가 한 달 앞으로 바짝 다가 오면서 정치판은 극단적인 상황을 치달으며 요동치고 있다. 여야 정파와 후보자들은 사생결단으로 나서고 있다. 정치의 배경과 내용, 그 귀결점은 결국 국민이 돼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질 수 없다. 정치가 국민을 향해 발언하고, 국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선정국에 국민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는 지금 그들만의 논리로 그들만의 게임에 몰입해 가고 있다.

세상은 어떤가. 정치는 여전히 개혁의 대상이고, 경제는 불안한 모습이다. 사회는 여전히 갈등하고 양극화의 골은 더욱 깊어 간다. 정치는 갈수록 목청을 높이는데, 민생은 더 어려워진다고 아우성이다. 이 ‘난제(難濟, 민생고)’의 상황이 필시 저 막무가내의 ‘중정(重政,정치과잉)’ 탓이리라. 김상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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