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술자리면 폭탄주 서너 잔쯤 도는 게 보통이 되다시피했다. 술이 약한 사람에게는 물론 고역이다. 그러나 맥주에 양주나 소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의 독특한 맛과 분위기를 즐기는 마니아 또한 적지 않은 모양이다. 폭탄주는 단숨에 취기를 돋우고 어색한 술자리의 분위기를 바꿔놓는 데는 그만이다. 폭탄주가 몇순배 돌다보면 상대방에 대한 경계가 무너지고, 서로 닫혔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마음의 무장해제를 하는 셈이다. 허리띠를 늦춰 매고(緩帶) 통음(痛飮)을 하는 경지로 들어 서는 것이다. 가끔 폭탄주가 몰고오는 이 같은 심리적 육체적 이완현상이 웃지 못할 해프닝을 만들기도 한다. 가끔 유명인사들이 폭탄주로 인해 실언과 실수로 혹독한 후유증을 겪는 모습을 보게 된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듯 음주 또한 마찬가지다. 음주는 이로움보다는 해악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많은 편이긴 하다.

그러나 적절하게 조절할 수만 있다면 술은 얼마든지 약(藥)이 된다. 중국의 시성(詩聖)으로 불린 두보(杜甫)는 “마음을 너그럽게 하는 것은 술이요, 흥을 돋우는 것으로는 시(詩) 만한 것이없다(寬心應是酒 遣興莫過詩)”고 했다. 술 한잔으로 마음이 넉넉해지면 시 한수 저절로 터져나오는 것이요, 시심이 발동하고 흥이 나면 자연 술이 따르는 것이리라. 이쯤 되면 취흥을 살리되 추졸함이 없고, 격을 지키되 막힘이 없게 되는 단계다.

상지대 김성훈 총장은 자신에게 특허권이 있다며 독특한 폭탄주를 돌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가 폭탄주를 제조·보급(?)하는 데는 특별한 신념이 있다. 폭탄주 제조에 밑 술로 쓰이는 맥주 대신 우유를 사용하는 이른바 ‘우유폭탄주’다. 똑같은 폭탄주의 기분을 느끼면서도 마시는 사람의 건강도 챙기고, 우유소비촉진을 통해 낙농가를 돕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농림부장관을 지낸 그의 이력과 변함없는 농촌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진다. 실제로 음주 전 우유 한 잔은 위벽을 보호하는 효과가 크다고 한다. 이왕이면 올 연말 송년회는 우유폭탄주 몇 잔으로 건강과 농촌을 동시에 생각하는 의미있는 자리로 만들자. 김상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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