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_caption
권력을 쥐거나 큰 재물을 얻게 되면 사람이 꼬인다. 문전성시(門前成市)는 권력자나 재력가의 주변에 몰려드는 인파가 저잣거리를 방불케 한다는 비유다. 이른바 힘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에게는 권력지향의 기본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력한 흡인력과 중독성 때문에 미국 닉슨 행정부의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권력은 최음제와 같다’고 말했다. 중국 주자(朱子)의 제자 축목(祝穆)이라는 학자가 지은 사문유취(事文類聚)라는 책이 있는데, 중국 상고 때부터 송나라 때까지의 각종 사건과 시문을 모아 엮은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여기에 권력의 속성을 잘 말해주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등장한다.

조나라 때 염파(廉頗)라는 사람이 벼슬에서 떨어져 낙향하자 그동안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졌다. 그러나 얼마 후 염파가 다시 장군으로 등용되자 전날 소리없이 사라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염파는 이들의 얕은 인심을 탓하며 내쫓으려 하자 한 사람이 나서 오히려 반박했다. 그대에게 세(勢)가 있으면 우리가 좇는 것이고, 세가 궁해지면 가는 것은 당연한 진리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화를 내는가 하고 말이다. 권력의 속성과 냉정함을 명증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다.

아라비아 속담에도 ‘재판관의 나귀가 죽으면 뭇사람들이 슬퍼하며 모여들지만, 정작 재판관 본인이 죽으면 그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권력지향의 기본 속성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엄청난 권력도 그 뿌리와 지향점이 민심과 호응할 때 힘을 받고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 또한 만고불변의 진리다.

지난 19일 실시된 제17대 대통령선거를 통해 권력과 민심의 함수가 극명하게 확인됐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정권을 탈환한 한나라당의 문턱에는 내년 4월 총선에 뜻을 둔 입지자들로 성시(成市)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세력을 따라 이합집산하는 그 속성을 마냥 탓할 일은 아니로되 다만 민심과 유리된 권력의 허상만 좇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는 교훈을 벌써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김상수 논설위원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