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집앞 들판을 가로 질러 학교가기를 좋아했다.

물론 신작로를 따라 학교가는 길이 있었기는 했지만 들길로 가는 것보다 멀 뿐만아니라 포장 도로도 아닌 자갈길이었고 이따금 고물 트럭이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 놓고 달아나는 길이라서 나에게는 그다지 친근감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들길로 다니기를 좋아했던 것은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밤새워 별 빛들을 끌어다 빚은 듯한 영롱한 이슬 방울들이 후두둑 후두둑 발목에 떨어지는 촉감이 상쾌했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들판을 반겨주는 풀꽃들이 사랑스러웠으며 아스라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또한 정겨워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들판은 항상 살아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처럼 풍요롭고 생명력이 넘치는 들판은 늘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못하고 순종함을 보여 모든 것을 비우고 있었다.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온갖 화려했던 들꽃이며 수목들, 풍요로웠던 오곡들도 겨울이 오면 어느 하나 아까워하며 숨겨두는 일없이 들판은 기꺼이 비워둬 버린다.

이러한 자연의 순수함과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면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옹졸하고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마음이 시려오기도 한다.

남이야 어떻든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혈전하는 요즈음 일단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무겁기만 하다.

그래도 이 사회에서 양심의 마지막 보루라 일컫는 학교 교육이라도 순수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학교 교실도 이제 곧 새학년 맞게되고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꽃이 이어질 것이다.

배움의 욕망으로 가득찬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나가 모처럼의 학교가 생명력이 넘쳐 흐를 것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잃지않도록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아직도 학교 현장에는 교육하는 일과 교육을 돕는 일이 혼돈되어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고있는 것이 현실이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더이상 교사들이 흔들리는 상황을 만들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대로 다행스러운 것은 누가 뭐라해도 학교 현장에는 구석 구석에서 남모르게 교사의 사명감을 다하는 많은 교사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교사들이 힘있게 바로 서야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이요, 교육이 바로서야 올바른 교육 입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새 출발을 하려는 마음 자세로 학생들과 함께 진한 삶을 살아가련다.

지난해의 아쉬운 일들을 잊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모두 다시 새롭게 시작해 나가자.

황연근<경포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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