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마광(司馬光)이 등산을 즐겼는지는 아는 바 없지만, 등산의 도(道)를 언급한 귀절을 귀동냥으로 들은 바 있다. '등산에도 도가 있다. 천천히 걸으면 피곤하지 않고, 튼튼한 땅을 딛으면 위험하지 않다'. 산을 오르는 도는 곧 인생을 살아가는 도와 다르지 않다는 뜻 아니었을까.

내가 등산의 도를 논할 수양을 갖추진 못했지만, 히말라야 여행 내내 그 짧은 귀절이 때로는 경이롭고 때로는 고단한 여정의 지침이 돼줬다.


10월 19일(2000년),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한지 3일째다. 새벽 4시30분 잠이 깼다. 전날 13시간이 넘는 강행군으로 몸은 파김치가 됐지만 덕분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해발 2850m인데도 몸 상태는 비교적 괜찮다. 오늘은 새벽에 푼힐 전망대를 다녀와 데우랄리(2980m), 반탄티(2590m)를 지나 타다바니(2590m)까지 가야한다. 힘겹게 올라와서 왜 다시 저지대로 내려가는지 의아해 하겠지만 고소적응을 위해선 고도 조절을 할 수밖에 없다.

새벽 4시50분 길을 나서 1시간만에 푼힐 전망대(3200m)에 도착했다. 날씨는 더 없이 좋았다.

다울라기리(8167m) 안나푸르나 1봉(8091m) 안나푸르나 남봉(7219m) 팡봉(7647m) 마차푸차레(6993m)가 빚어내는 대자연의 파노라마가 눈 앞에 장대한 모습으로 펼쳐졌다.

아! … 나는 그저 눈으로 바라볼 뿐 저 영봉(靈峰)들의 장엄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산은 신이 만든 창조물 중에 가장 장엄한 아름다움이라 했던가. 그것은 인간의 힘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신의 경지, 그것이었다.

때마침 일출이 산상(山上)에 부서지고 있었다. 금빛 가루보다 더 찬란한 히말라야의 햇살이 만년설에 부딪히며 연출해내는 대자연의 파노라마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또다른 세상일세, 인간세상이 아니로세)이 아닌가.

일기변화가 무쌍해 연중 반은 저 장관을 볼 수 없다는데, 이 노년의 트레커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 히말라야의 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남기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전망대를 내려오면서 나를 포함해 트레킹 대원들은 오늘의 장관 못지 않게 팡봉의 비원을 떠올리며 한 젊은 산악인의 명복을 빌었다. 지난 1997년 강원대 팡봉 원정대의 일원으로 정상도전에 나섰다가 설산에 묻힌 김여훈군을 위해.

숙소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 고라파니를 향해 출발했다. 고도 적응을 하느라고 했는데도 대원중의 몇 사람이 고산증세로 고생을 하기 시작했다. 일명 고산병이 온 것이다. 고소(高所)는 보통 3000m이상의 고도를 말하는데, 건강한 사람이라도 이 정도 고도부터는 두통과 구토 호흡장애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산 트레킹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산증세는 감수를 해야 한다. 고도조절을 적절히 한다거나 물을 많이 마신다거나 자신의 체력에 맞게 일정을 맞춘다거나 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사서 하는 고생 이라고나 할까.

그런 고생을 하며 왜 산에 가느냐고 묻는다면 소월(素月)식으로 답할 수밖에. '산이 좋아 산에 가노라네'

오후부터 비가 부슬거렸다. 히말라야의 날씨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중앙아시아와 인도대륙사이에 솟아있는 히말라야는 남북간의 높낮이가 심해 건조습윤의 변화가 클 뿐 아니라 낮은 지대의 아열대와 높은 지대의 빙설지대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기후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후사정 때문에 몬순기인 여름에는 등반이 불허된다. 히말라야 등반시즌은 연 세 시즌으로 나누는데, 3~5월까지가 프레 몬순, 9월~11월15일까지를 포스트 몬순, 12월~2월15일까지를 겨울 시즌으로 부른다. 현재 우리가 택한 포스트 몬순기는 트레킹을 하는데 가장 좋은 시즌인데도 날씨 변덕이 심하다.

고라파니에서 데우랄리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이고 반탄티까지는 울창한 계곡을 따라 이어진 내리막이어서 체력부담이 덜했다. 반탄티에서 점심을 먹고 떠나 오후3시40분 타다바니에 도착했다.

이곳은 간드룽과 촘롱을 잇는 삼거리로 매우 번잡하고 롯지(숙박시설) 구하기도 어려웠다. 간신히 방 하나를 구해 여자대원과 60대 이상 남자대원만 한 방에 들고 나머지 대원들은 식당에서 쪽 잠을 자야했다.

트레킹의 재미 가운데 식사를 빼놓을 수 없다. 이날 저녁에는 갑자기 생각도 못했던 자반고등어가 식탁 위에 올랐다. 삼척에 사는 김승민대원이 소금을 몇 켜나 친 고등어를 가져왔는데 조금도 상하지 않은 상태로 있는 게 아닌가. 히말라야에서 생선을 먹을 수 있다니, 그것도 우리나라 자반고등어를 먹을 수 있었으니 여행기에 꼭 한 줄 소개해도 될 만한 후일담 일듯 싶다.

10월20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주위를 살피니 안나푸르나 남봉과 마차푸차레가 코앞에 와있다. 오전 7시30분 타다바니를 출발했다. 오늘의 코스는 추일레~킴룽콜라~구중마을(2050m)~촘롱(2050m)이다.

원래는 시누와(2050m)까지 계획돼 있었지만, 앞으로 2일간 이뤄질 4000m대 고산 트레킹을 위해 휴식이 필요했다. 대원들은 타다바니를 떠난지 4시간40분만에 촘롱에 도착했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네팔 국민들이 얼마나 꽃을 사랑하는 지 알 수 있다. 집집마다 꽃이 만발한 화단을 가꾸고 있다. 창문에도 어김없이 화분이 놓여있다. 마을마다 꽃동네인 셈이다. 이번 여행 중 만난 한 소녀와 꽃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도 가장 감동적인 추억이다.

구중마을에서 촘롱까지는 오르막길인데 마의 코스로 불리는 돌계단이 있다. 약 50분을 올라 가야하는 힘들고 지루한 코스다. 이 돌계단을 헐떡이며 오르고 있는데, 교복을 단정히 입은 예쁜 소녀가 계단에 서서 꽃 한송이를 일행에게 나눠주며 '나마스테(안녕하세요)'인사를 하는게 아닌가.

후에 롯지에 묵으며 들으니 트레커들 모두가 꽃을 받았다는 것이다. 힘들게 산을 오르는 여행객들에게 한송이 꽃을 전해주며 인사를 하던 그 여학생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실 고산에 사는 네팔인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순박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나마스테' 인사를 건네고 길안내까지 해준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들꽃 하나라도 사랑할 줄 알고 그 마음을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전해주는 사람들이다.

나는 히말라야의 네팔인을 보면서 명심보감의 '從善如登(선을 좇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을 떠올렸다. 히말라야에 살며 자연의 심성을 배운 탓일까. 비록 외양은 남루하고 생활은 곤궁해도 그들의 눈과 가슴을 통해, 때묻지 않은 인간의 순수를 만날 수 있었다.

前 강원도 산악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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