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남우

문화부장

내가 아는 서양화가 K씨는 전업예술가다.

그림의 매력에 빠져 대학을 졸업하고 변변한 직장 한번 잡아보지 않고 전업예술가의 길로 들어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전업예술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삶은 만족스러울지 모르나 가족들은 늘 불만이다. 아내가 생활비를 벌어 가정을 꾸려간다. 이곳 저곳 전시회 때마다 작품을 내걸지만 작품이 선뜻 팔리지도 않는다.

이렇다 보니 지인에게 그림 몇 점 팔아 그룹전의 전시비용으로 사용하고 나면 아내에게 생활비로 쓰라고 선뜻 건넬 돈이 없다. 경제적으로는 빈곤한 삶이다. 오히려 아내에게 늘 손을 벌려야 하는 형편이다.

“나는 예술가”라며 안위하고 살아가지만 가장으로서는 ‘0점짜리’ 인생이다.

지금은 그나마 아내가 벌지만 나이가 들수록 앞날이 걱정된단다.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전업예술가의 길로 들어선 것을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고백했다.

최근에는 그림시장이 예전보다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소수의 유명작가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대부분의 일반 작가들에게는 남의 얘기처럼 들린다. 지방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우리나라 문화예술인의 활동여건과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문화예술인 세명 중 두명이 월 100만원도 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가는 가난하다’는 옛말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개인 창작활동과 관련해 월평균 수입액이 하나도 없다고 답한 예술가는 무려 26.2%나 됐다. 51만~100만원 15.1%, 101만~200만원 17%, 201만원 이상 16.7%로 나타났다. 월평균 고정수입이 100만원 이하인 문화예술인이 66.5%에 달하는 셈이다.

특히 문학인의 예술활동 관련 수입이 크게 낮았다. 무려 91.5%가 월평균 수입이 100만원 이하인 것으로 조사됐다. 미술(79.0%), 사진(79.0%), 연극(74.0%), 영화(71.0%), 국악(67.0%), 무용(64.0%), 음악(60.0%) 순으로 100만원 이하의 비율이 높았다.

4대 보험 중에서 산재보험 가입률은 27.9%에 그쳤다. 고용보험 가입률은 30.5%였고,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에는 각각 97.8%, 66.7%가 가입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문화예술인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을 위해 올해부터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됐지만 예술인들이 체감하는 혜택은 미미하다.

문화부에서 신청한 355억원의 예산 가운데 70%가 삭감돼 올 사업에는 100억원의 예산만 투입돼 수혜자가 극히 일부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문화부가 추산한 54만명의 예술인 가운데 2400명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가장 큰 문제는 예술인에 대한 4대 보험이다. 예술인복지법에는 예술인의 업무상 재해에 관한 보호(제7조)에 산재보험만 포함됐을 뿐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은 빠져 있다. 예술인복지법 시행에 따라 산재보험도 3개월 이상 보험을 유지해야 일부를 지원받을수 있다.

도내 한 문화예술인은 올해 첫 시행되는 예술인복지법이 많은 예술인들의 기대를 모았으나 예산부족으로 지극히 일부만 혜택을 받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전업예술가로 살아가며 창작의 길을 걷는 것은 고달프고 팍팍하다. 그러나 그들이 있기에 우리네 삶이 위로 받는다. 세상사에 지치고 힘들 때 한 편의 시와 음악으로 지친 영혼을 달래고, 아이의 손을 잡고 찾은 전시장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활력을 얻는다. 전업예술가들이 아무런 장애없이 순수 예술인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예술인의 창작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

세월은 가도 예술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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