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강릉시민 무더위 탈출 ‘산으로 들로’
아침 최저 30.9도 기록
대관령·남대천·경포해변
캠핑·노숙족 몰려 북새통

▲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역에 열대야가 이어진 지난 8일 밤 강릉항과 남항진 해변을 잇는 인도교인 솔바람다리에서 시민들이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강릉/김우열
강릉시 입암동에 사는 김동훈(32)씨는 지난 8일 저녁 남대천 하구 ‘솔바람 다리’로 퇴근했다.

다리 한켠에 일찌감치 자리를 편 아내가 문자메시지로 퇴근 호출을 했기 때문이다. 이날 김 씨 가족은 아예 솔바람다리를 안방 삼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잠을 잤다.

대관령 산 바람과 바닷바람을 모두 맞을 수 있는 곳에 있는 솔바람다리는 이날 밤 도심을 빠져나온 ‘시민 피서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밤 9시를 넘어서자 길이 192m, 폭 7∼14m에 달하는 다리는 더 이상 수용이 어려울 정도로 넘쳤다.

이날 강릉의 낮 최고기온은 35.9도.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9일 아침최저기온은 무려 31도를 기록했다. 8일 아침최저기온이 30.9도로 지난 1911년 기상관측 이래 102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는데, 불과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다시 기록이 깨진 것이다.

밤낮없이 가마솥 염천이 이어지자 강릉 도심의 아파트 촌은 텅텅비고, 대관령과 남대천변, 경포해변 등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엑소더스’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도처에 이 같은 ‘자연 피서지’가 널려있는 것이 폭염 속 강릉시민들에게는 큰 행복이다.

아흔아홉굽이로 유명한 대관령 옛 고속도로는 열대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3일부터 집을 떠나 ‘무더위를 즐기는’ 캠핑·노숙족들이 몰리고 있다.

대관령은 기상 관측 이래 아직 한번도 열대야가 발생하지 않은 피서 명소다. 새벽녘에는 이불을 덮지 않은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어 이곳에서는 무더위가 딴세상 얘기다.

9일 0시, 해발 860여m 대관령 옛 고속도로 상·하행선 휴게소 광장은 대형 캠핑장을 방불케했다. 형형색색의 텐트 속에서 잠을 청하거나 주변에 둘러앉아 정담과 게임을 즐기는 피서인파가 즐비했다. 텐트 옆에는 쌀과 라면 등 양식거리와 조리도구, 알람시계, 모기향 등이 빈틈없이 갖춰져 있는 것이 마치 가정집 안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대관령∼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 곳곳에도 나만의 피서를 즐기려는 텐트족들이 진을 쳤고, 아흔아홉굽이 도로변에도 한굽이 돌때마다 아예 돗자리나 매트리스만 깔고 모기장을 친 채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쉽게 목격됐다.

박재현(37·강릉시 송정동) 씨는 “강릉 시내에서 차로 20분 밖에 걸리지 않아 무더위를 쫓고 휴가도 즐길 겸 아예 대관령에서 출·퇴근 하고 있다”며 “퇴근할 때 필요한 물품을 확인해 마트에 들러 구입한 뒤 대관령에서 가족들과 함께 야외 캠핑을 즐기는 일이 이젠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솔바람다리에서 만난 이영주(46·여·강릉시 포남동) 씨는 “웬만한 무더위는 그냥 버텼는데 이번 열대야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6년만에 야외 취침을 하러 나왔다”며 “잠을 통 못 자 직장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짜증도 많아졌는데, 오랜만에 안식처를 찾은 것 같다”며 서둘러 잠을 청했다. 강릉/김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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