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호

레포츠 부장 겸 뉴미디어 부장

몇년 전 삿포로(1972년), 나가노(1998년) 등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취재하기 위해 일본에 갈 기회가 있었다. 당시 안내를 맡은 삿포로시 공무원은 동계올림픽 개최를 ‘신이 준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처음 그 말을 들을 땐 ‘좀 과하다’ 싶었지만 ‘일본의 강원도’로 상대적 낙후지역이던 삿포로가 동계올림픽 이후 이룬 성장을 보고 들으면서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1960년 인구 52만명이던 삿포로는 동계올림픽 개최 이후 눈부신 지역발전으로 올림픽 개최연도인 1972년 2배 가까운 110만명, 1990년 168만명, 2005년 188만명으로 일본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증가세로 귀향률 1위 지역이 됐다.

삿포로시 공무원은 “올림픽 이후 관광산업과 첨단 산업의 동반 성장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고, 특히 주민들의 삿포로에 대한 강한 애정은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곳 중 하나였던 이곳에서 그 전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었다”고 자랑했다.

해묵은 취재 경험을 꺼내놓은 것은 당시 삿포로 주민들을 만나면서 “올림픽 레거시(유산)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던 기억 때문이다.

삿포로는 동계올림픽 개최 후 관광, 스포츠, IT를 지역 핵심산업으로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청정자원과 연계한 관광객 유치, 눈을 주제로 한 스포츠 활성화, 청정자원과 어울리는 첨단산업 유치에 노력한 결과다.

특히 삿포로 IT밸리는 삿포로 시내에 시스템개발 및 관련서비스 IT기업 수백개가 집적돼 있으며 일본 첨단산업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1990년대 들어서는 기존 낙후지역에서 ‘IT산업=삿포로’라는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삿포로 IT밸리가 ‘동계올림픽→첨단산업 활성화→지역경제 성장’과정의 중심축에 있다는 것은 강원도가 고심하는 평창동계올림픽 레거시 플랜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노르웨이 릴레함메르가 1994년 동계올림픽 개최 이후 북유럽의 대표적 휴양도시로 발돋움한 것은 물론 이후 50여 IT·바이오 기업이 입주한 것은 릴레함메르의 레거시 플랜 때문이다. 당시 릴레함메르올림픽의 키워드는 ‘환경’이었고 이를 경기장 건설부터 사후 활용에까지 고집스럽게 관철했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전 당시 경쟁도시로 우리에게 익숙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스포츠와 문화가 결합된 가장 창조적인 융합상품의 사례를 보여준다.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국제모차르트주간’(Internationale Mozartwoche)은 모차르트 탄생일인 1월 27일을 기념해 유럽은 물론 전세계에서 수천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문화상품이다. 이 기간에는 잘츠부르크 공항이 ‘동계스포츠의 관문’이라는 애칭을 얻을 정도로 설상스포츠를 즐기려는 전세계의 관광객들까지 몰려든다.

몇년 전 취재차 잘츠부르크를 찾았을 때 시민들이 “빚을 내면서까지 올림픽을 유치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배경에는 ‘모차르트’와 ‘동계스포츠’가 있었던 것이다.

올림픽 레거시는 기반시설이나 경제 발전 너머의 무형의 자산에 더 초점을 맞춘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밴쿠버 레거시를 주도한 부르스 드와르(Bruce Dewar) LIFT Philanthropy 회장은 “올림픽의 성공 배경에는 ‘건물은 중요하지 않다’며 올림픽 이후의 유산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은 주민들이 있었다. 대회 시작전부터 지역에 생겨난 다양한 조직이 첫째 유산이다. 관광, 예술, 지적자산, 봉사활동, 주민협력, 스포츠 등 여러 방면에서 사회적 약속을 통해 공통부분을 융합하고 협력체계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평창의 참고서인 이번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성적을 올리고 대회운영 기술을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강원도로서는 올림픽 이후 ‘강원도’라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소치의 ‘올림픽 레거시(legacy) 플랜’을 보다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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