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벌판 가로지른 ‘멧돼지길’
[르포] 수확기 유해조수 출몰 현장
논두렁 곳곳 쑥대밭 수확 못할정도 심각

▲ 7일 오전 멧돼지 출몰로 농작물 피해를 입은 김항기(63·춘천 신북읍 용산1리)씨가 멧돼지가 훑고간 자리를 가리키고 있다. 최경식

7일 오전 춘천시 신북읍 용산1리 김항기(63)씨의 논.

“멧돼지가 출몰해 논 구석구석을 헤집어놨다”는 김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윤종성 강원지회장의 시선이 논두렁으로 향했다.

3만3000㎡ 면적의 논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었지만, 논두렁은 멧돼지가 들쑤신 흔적에 아수라장이었다. 논두렁 곳곳에는 멧돼지 무리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논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벼가 빚어낸 황금물결 사이로 멧돼지가 훑고간 전용도로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논을 둘러 본 윤종성 지회장은 20분도 채 안 돼 수 십여곳에서 멧돼지가 싹쓸이 해놓은 벼 이삭 뭉치를 손에 쥐고 한숨만 연발했다.

윤 지회장은 “(멧돼지가)벼 열매는 물론 지렁이와 땅강아지를 먹기 위해 논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다”며 “겉보기에는 벼가 이상이 없어보여도 수확해보면 열매 없는 벼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논 가장자리에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책이 설치돼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김씨는 “야생동물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춘천시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철책을 설치했지만, 한 달 전부터 출몰한 멧돼지들은 신출귀몰하게도 밭 이곳저곳을 헤집어 놨다”며 “열흘 뒤면 수확이라 걱정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가을철 수확기를 맞아 농작물을 훼손하는 유해 조수들의 출몰이 급증, 농심(農心)이 타들어갔다.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강원지회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도내 시·군 지회별로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피해 신고건수가 평달 대비 20∼30% 정도 급증했다.

춘천시의 경우 올 들어 9월말까지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보상 건수가 41건이었으나 이 중 16건(39%)이 8∼9월에 집중됐다. 특히 멧돼지를 비롯, 고라니, 까치, 까마귀 등의 출몰로 올 현재 춘천 지역 내 작물별 피해면적은 옥수수(1만2852㎡), 복숭아(4120㎡), 벼(2564㎡) 등 2만4614㎡에 달했다.

도내 18개 시·군에서는 지난해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신고 건수 및 금액이 2185건의 15억400만원으로 전년(2048건의 11억4900만원) 대비 각각 6.6%(137건)와 30.8%(3억5500만원) 증가했다. 또 도와 각 시·군에서는 지난해 야생동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35억44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농작물 피해예방시설 2367곳을 설치 및 지원했으나 농가의 사후관리 능력 부족 등으로 인해 야생동물 피해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 접수된 농작물 피해신고(2185건) 가운데 1808건에 대한 9억3800만원의 피해보상금은 농가들에게 지원됐으나, 17.2%(377건)는 보상을 받지 못했다. 최경식 kyungsi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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