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국장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18대 대선에서 승리한후 강원도민들은 기대가 많았다. 같은 해 19대 총선에서 도민들은 지역구 9석 모두를 빨간색으로 옷을 갈아 입은 새누리당에 몰아줬다. 대선에서도 박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경북(TK)의 2중대처럼 TK 다음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로 총대를 멨다. 의도됐든 안 됐든 결과는 그랬다. 박 대통령은 취임준비위원장에 12년 동안 강원도지사로 일한 김진선 2018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을 선임하면서 도민들의 애정에 화답했다. 일약,김 위원장은 정가의 뉴스 메이커로 주목을 받았고 도민들의 관심도 쇄도했다. 그는 자녀 혼사를 쉬쉬하며 ‘작은 결혼식’으로 치르고 화환과 부조도 모두 되돌려 보냈다. 기자는 동향이라는 인연과 같은 빌딩에서 일하는 사연이 겹쳐 가끔 만나 새 정부에서 많은 강원출신 인사들이 일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김진선 전 지사는 이명박(MB) 대통령 시절 적지 않은 구박을 받았다. 정치권에서는 그 이유를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찾곤 했다. 김 전 지사와 MB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강원지사와 서울시장으로 만났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 지역현안 등을 논의하며 정을 이어갔다. 하지만 명운을 건 경선에서 김 전 지사는 MB의 요청을 뿌리치고 박근혜 후보를 밀었다. 결과는 MB의 승리였고,그후 대권을 거머쥔 이명박 정부에서 김 전 지사는 자세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MB 참모들은 김 전 지사를 눈을 치켜 뜨고 지켜봤다. 2010년 6월 지방선거는 전환점이 됐다. 보수의 텃밭이라는 강원도에서 민주당 출신 이광재 후보가 도지사에 당선됐다. MB는 그해 11월 김 전 지사를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특임대사로,이듬해 1월 청와대 지방행정특별보좌관으로 중용했다.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평창올림픽을 유치한 후에는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MB는 그를 초대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에 임명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표면상 회복됐다.

요즘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원박’(원조 박근혜계),‘진박’(진짜 친박계)은 어쩌면 김 전 지사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근황은 잘 나가는 ‘원박’,‘진박’과는 확연히 다르다.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으로 활약했던 그에게 새 정부 출범후 경사는 없었다. 오히려 흉사가 이어졌다. 2014년 1월 정가에서는 김 전 지사의 청와대 비서실장 발탁설이 나돌았고,일부 언론이 대통령 외유중 이를 보도했다. 서슬이 시퍼렇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버티고 있던 엄중한 시절이었다. 오비이락. 그뒤 평창올림픽조직위가 이례적으로 감사원 감사를 받았고,측근들은 사정기관으로부터 혼쭐이 난후 하나 둘 자리를 떠야 했다. 급기야 그 자신도 같은해 7월 주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조직위원장 자리를 타의로 물러나야 했다.

그렇게 잊혀져 가던 김진선 전 지사가 다시 지면에 등장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그의 동선과 언행은 출마선언과 다름이 없다. 선거구 획정과 동시에 유불리를 계산해 지역구를 택할 것이다. 강원정치의 지리 멸렬,강원도정의 비전 부재,강원경제의 불임 성장이 고희(古稀)의 노정객을 다시 정치 전면에 불러 냈다고 이해한다. 개인적으로 시간도 없다. 그가 박 대통령을 보좌해 출범시킨 박근혜 정부도 2년밖에 남지 않았다. 문전성시를 이뤘던 식객들은 주군과 함께 백두에 백수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해도 총선은 김 전 지사에게 양날의 칼이다. 고위험,고배당의 룰렛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4월13일이 그에게 화려한 재기의 무대가 될지,씁쓸한 퇴장을 부른 덫이 될지…. 이제 3개월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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