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판자촌 ‘돼지골’을 가다
다판자벽 틈으로 칼바람
기초수급비로 난방 부담
저소득노인 힘겨운 월동

   
▲ 19일 오전 춘천시 후평동의 한 판자촌 마을에서 살고 있는 갈모(90)할머니가 추운 날씨와 난방비를 걱정하며 꺼진 전기난로 옆에 두꺼운 이불을 덮고 앉아 있다.
   
▲ 한파가 몰아친 19일 판자촌인 일명 ‘돼지골’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다.

올겨울 들어 가장 강력한 한파가 불어닥치면서 저소득층 노인들의 힘겨운 겨울나기가 이어지고 있다.

19일 오전 11시쯤 춘천시 후평동의 한 판자촌 마을.

이날 오전 영하 15도의 한파에 바람까지 거세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달하는 날씨 속 춘천에 유일하게 남은 판자촌인 일명 ‘돼지골’ 마을도 꽁꽁 얼어붙었다.

이곳은 6·25전쟁이 끝난 후 하나둘씩 모인 사람들이 판잣집을 짓고 돼지를 키우며 살았다고 해 ‘돼지골’로 불리고 있다.

돼지골에는 쓸쓸한 노년생활을 보내는 20여가구의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고 있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셋방살이를 하다 12년 전 이 마을에 자리를 잡은 한모(79·여) 할머니는 좁은 방에서 연탄을 때우며 홀로 추운겨울을 보내고 있다.

23㎡ (7평)가량의 좁은 집은 얇은 판자에 스티로폼만을 덧붙여 벽을 만들어 놓은 탓에 매서운 칼바람이 벽을 뚫고 방 안으로 파고들었다.

할머니의 집은 마을 언덕쯤에 위치해 바람이 자주 불고 날이 추워지면 쥐가 수시로 나타나 스티로폼 벽을 갉아먹고 들어와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할머니는 “얼마 전 연탄난로가 고장나는 바람에 오늘처럼 춥거나 비가오는 흐린 날에는 연탄가스가 방안에 간혹 들어올 때도 있다”며 “수리비가 없어 임시방편으로 스티로폼으로 막아놨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한달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 20만원 정도다.

월세 5만원과 공과금,교통비,식비 등으로 쓰기에도 빠듯하지만 겨울에는 난방비 등이 추가된다.

1~2월에는 노인 일자리 사회활동 지원사업도 운영되지 않아 마땅한 수입도 없는 상황이다.

손녀와 함께 이 마을에서 지내는 갈모(90·여)할머니도 하루종일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는 연탄을 자주 갈 수가 없어 기름보일러를 설치했지만 비싼 난방비가 부담돼 가동을 멈춘지 오래다.

할머니는 “지난번 기름을 지원해준다고 누가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지원받은 건 없다”며 “빨리 추운 겨울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원도가 홍보하는 혹한기 독거노인 효도합숙(공동생활가정) 사업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해 보이는 이들은 오히려 이런 사업이 있다는 것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이들 노인들은 “그런 사업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듣는다.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종재 leejj@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