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정길 교무

원불교 강원교구 사무국장

얼마 전 신영복 선생이 작고하셨다. 마치 드라마처럼 한 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그를 흠모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다 가신 이 시대의 사표임에 틀림없다. 그분의 언어에는 깊은 사유와 적나라한 현실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고,순수한 감성이 예리한 지성 속에 배어있는 것 같았다.

그분이 남긴 수많은 글과 글씨가 있지만 유독 석과불식이라는 글과 글씨가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다. 20년 수형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가슴에 새긴 글이라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은 주역에서 유래한다. 산지박(山地剝)괘의 여섯 번째 효를 설명하는 글귀이다. 종자로 쓰일 열매는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지막 씨앗 하나를 남겨 놓아야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한국교수신문에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가 선정되었다. 혼용은 어리석고 무능한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이며,무도는 세상이 혼란하여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를 야기한 지도자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2015년은 메르스 사태나 청와대의 압력으로 인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의 훼손,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으로 가히 혼용이 무도한 나라를 만들었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2016년도 새해 벽두부터 북한의 핵실험이나 위안부 협상 무효선언과 쉬운 해고지침을 담은 노동법 개정안 반대시위며,이에 맞서 조속한 법안처리를 압박하고자 거리로 나가 서명운동을 벌이는 대통령과 재벌 대기업의 행태를 보노라면 남과 북,한국과 일본,갑과 을 간에 벌어질 기 싸움에 다시 한 번 혼용무도의 해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층은 88만원 세대에서 삼포 오포 칠포 헬조선이라는 말로 자신과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부정하고 있다. 이들에게 누가 희망을 줄 수 있는가? 우리 사회는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종자로 쓰일 열매들이 여기저기서 이미 싹 틔울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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