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안보관광지
애국인사 고문·학살 만행 노동당사
한국전쟁 중 북한군 막사 철원감리교회
총 길이 3.5㎞ 기습 남침용 제2땅굴

우리민족의 가장 아픈 역사 중의 하나인 6·25 민족동란이 발발한 지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6월은 아직까지 우리에겐 아픈 시간이다. 도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분단 철책선이 지나고 있고 노동당사와 제2땅굴 등 분단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철원지역은 특히 6·25전쟁과 남북 분단에 대한 아픔이 더 강한 곳이다. 매년 6월 무렵 안보관광을 위해 세대 간 구분 없이 철원을 찾는 방문객의 발길이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이다. 철원지역의 주요 안보관광지를 살펴본다.

▲ 노동당사


■ 노동당사

철원읍 관전리에 위치한 노동당사는 북 정권이 1946년 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건설한 3층 건물이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이란 구실로 1개리 당 백미 100가마와 인력,장비를 동원했으며 건물 내부작업 때는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만 동원했다고 한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김화,평강,포천 일대를 관장하며 양민수탈과 애국인사들의 체포·고문·학살 등의 만행을 자행,한 번 이곳에 끌려 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반송장이 돼 나올 만큼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른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건물 뒤 방공호에서는 많은 인골과 함께 만행에 사용된 수많은 실탄과 철사줄 등이 발견돼 잔혹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현재 이 건물은 6·25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건물 전체가 검게 그을리고 포탄과 총탄 자국이 나있으며 분단의 아픔을 떠올리는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 철원군은 안보관광코스의 중심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노동당사는 지난 2002년 5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 농산물검사소·철원감리교회

철원읍 외촌리에 위치한 농산물검사소

의 원이름은

곡물검사소 철원출장소로 1936년 일제치하에 철원지방 농산물의 품질을 검사하던 공공기관 건물이었으나 해방 후 북한의 공산치하에서는 불순분자 색출·체포 등을 자행하던 공산당의 검찰청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현재 구철원 시가지 유적 중에서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는 유일한 건물로 지난 2002년 5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됐다. 철원감리교회는 일제시대인 1920년 철원 최초의 붉은 벽돌

양식으로 건축했다가 1936년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로 재건축된 시설이지만 6·25때 파괴돼 흔적만 남아 있다. 일제시대 교인이 500명에 달할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되던 철원감리교회는 광복 후 6·25전쟁 발발 전까지 기독교 반공청년의 활동장소로 활용됐으나 전쟁 중에는 북한군이 막사로 사용하면서 교회 지하실을 양민학살 장소로 악용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 건물도 지난 2002년 5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됐다.

▲ 승일교

■ 승일교

승일교는 현재 동송읍과 갈말읍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한탄강 중류지점에 놓여있는 높이 35m,길이 120m,폭 6m의 다리이다. 이 다리는

공산치하인 1948년 8

월부터 북한정권의 필요에 의해 철원·김화지역 주민들을 ‘노력공작대’라는 명목으로 5일간 교대제로 동원해 장흥리쪽에서부터 공사를 하던 중 다리의 절반정도가 추진된 상태에서 6.25전쟁으로 중단됐다가 수복후 우리 정부에서 약간 다른 공법으로 나머지 구간을 마무리 해 1958년 준공,승일교라는 명칭을 붙이며 이용하던 다리이다. 이 승일교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가설이 전해오는데 남북합작으로 건설한 다리라는 의미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따와서 만들었다는 설과 6·25당시 한탄강을 건너 북진 중 전사한 고 박승일 대령을 기리기 위해 명명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승일교는 지난 1999년 8월 승일교 바로 옆 남쪽에 현대식 공법으로 가설한 한탄대교가 준공됨에 따라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며 지난 2002년 5월 등록문화재 제26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철원군은 지난 2002년 6월 승일교 주변에 승일공원을 조성,관광객들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 제2땅굴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이 땅굴은 우리 국군초병이 경계근무 중 땅속에서 울리는 폭음을 청취함으로써 현대장비를 통한 시추작업으로 땅굴 소재를 확인,수십일간의 끈질긴 작업 끝에 1975년 3월 19일 한국군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발견한 북한의 기습남침용 지하 땅굴이다. 견고한 화강암층을 뚫어 만든 제2땅굴은 지하 50~150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총 연장길이 3.5km 중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1.1km까지 파내려왔다. 이 땅굴은 2m 높이의 아치형 구조로 건설돼 한 시간당 중부장한 병력 3만명과 야포 등 대규모 침투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북괴의 엄청난 도발현장이다.

■ 군탄공원과 박정희 대통

령 전역비

군탄공원은 갈말읍 군탄리에 있는 공원으로 박정희 장군이 1963년 8월 30일 전역식을 가진 유서 깊은 곳으로 지난 1969년 8월 30일 국군장병 일동의 이름으로 기념비를 세운데 이어 지난 1977년 대리석으로 기념비를 세우고 군탄공원을 조성해 철원주민들의 휴식처로 활용하고 있다.

■ 백마고지 전투와 위령비

한국전쟁 기간인 1952년 10월 철원읍 대마리 북방에 위치한 무명의 한 작은 고지를 놓고 한국군 보병 제9사단(사단장 김종오)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전력을 기울여 쟁탈전을 벌인 끝에 우리 국군의 승리로 매듭지어진 전투이다.

피아간 12차례의 공방으로 24회나 주인이 바뀐 이 고지는 처절한 혈투로 변모한 산의 모습이 흡사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같아 백마고지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 저격능선 전투와 전적비

저격능선 전투는 1952년 10월 중순 우리국군 제2사단(사단장 정일권)이 적의 아성으로 알려진 오성산의 전선을 공격해 6주간의 격전 끝에 적을 격퇴하고 고지를 점령한 전투이다.

전쟁이 끝난 뒤 육군 5군단(군단장 김종오)은 1957년 7월 1일 김화읍 청양1리 남대천변 산록에 높이 1m,둘레 2m의 자연석 화강암 재료를 사용해 전투 전적비를 세워 이 전투를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삽슬봉과 아이스크림 고지

아이스크림 고지로 더 잘알려진 삽슬봉은 예전에 이 산밑에 삽송리(일명 삼송리)라는 마을이 있어 삽송봉이라 불렸는데 6·25전쟁당시 피아간 처절한 생탈전과 포격이 심해 마치 산이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렸다 하여 아이스크림 고지란 별명이 붙었다. 삽슬봉은 고려시대에 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

어 북쪽 평강의 진촌산 봉수대와 남쪽의 할미산(구수봉) 봉수대를 연결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철원/안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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