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 나라에 갇힌 대한민국서 완만한 행복 찾기

▲ 곡선의 여유가 사라지는 사회.서슬퍼런 직각의 시대를 지나 완만과 조화가 중심이 되는 사회가 요구되고 있다.그래서일까.최근 완공된 국내 최고층의 제2롯데월드처럼 직선을 버리고 곡면을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곡선의 여유가 사라지는 사회.서슬퍼런 직각의 시대를 지나 완만과 조화가 중심이 되는 사회가 요구되고 있다.그래서일까.최근 완공된 국내 최고층의 제2롯데월드처럼 직선을 버리고 곡면을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높이 들어서는 아파트 군지를 보면서 느닷없이 선(線)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구불구불한 곡선 대신 네모이거나 화살표 같은 예각의 건물들이 혁명군처럼 위압적으로 들이 닥치는 느낌이었다.그것은 마치 야트막한 산의 높이를 넘지 않는 초가집들이 올망졸망한 순한 마을에 갑자기 거대한 피라미드 건물이 난파한 형국 같다고나 할까.그래서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직선나라에 포위된 곡선민국의 실향한 심정이랄만 했다.

그리하여 모든 생명이 바다에서 출발했듯이 아무래도 선도 분명 해발 ‘0’의 수평선에서 시작했을 것이기에 ‘등고선’을 검색해 봤다. 사전에는 ‘지형의 높낮이나 경사의 완급을 지도에 나타내기 위하여 표고가 같은 지점을 나타낸 곡선’으로 나온다.그러니까 등고선은 바다로부터 산까지 어떤 미적인 선입견을 없앤 다분히 사무적인 높이의 이어짐이라는 것이다.그저 막연히 달그림자 비치는 뒷동산을 따라 자연스레 이어지는 곡선쯤으로 본 것과는 조금 달랐다.

어쨌든 이런 산세는 낮에 보아도 좋지만,저녁을 먹고 슬금슬금 어두워지는 초여름 밤,반달정도가 비추는 마을에 나서보면 명확해진다.세상은 어두워지고 개구리 울음소리가 가득한 둑방으로 별들이 쏟아져 내린다.그 총총한 별들 뒤로 하늘은 까무룩 졸고 있고 그 쥐위로 검은 산 그림자가 서로 어깨를 겯고 우뚝하였는데 아무리 한밤중이라도 하나도 무섭거나 외롭지 않았다.한밤에나 볼 수 있었던 둥근 힘이었다.그러고 보면 우린 태생적으로 둥근 선에 매인 몸들이다.아늑한 자궁에서 생명의 젖줄인 엄마의 품으로 생존이 시작되어 늙어 죽으면 맞게 되는 원형의 무덤까지.그러니까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온통 원형의 곡선으로 이루어진 원형질(圓形質)의 세계이다.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영어에도 무덤을 뜻하는 ‘Tomb’의 어원은 그리스의 ‘Tymbos’(몸이 묻히는 둔덕)에서 비롯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동서양 삶의 시작과 끝이 원형이라는 점은 또 무슨 공교로운 공통점이랴.

그렇지만, 이런 오랜 원형질의 유전 속에도 우리의 생활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맞고 있다.마치 이것은 낮이 밤이 되듯이 어쩔 수 없는 국면이기도 하다.그 원형 깨뜨리기는 먼저 어릴 적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그래프일 것이다.그것이 성적이든 심부름이든 청소이든 우리는 마땅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객체로 막대그래프의 세계로 편입된다.이것은 중고딩, 대학을 거쳐 회사원이 되어 목도하게 되는 실적그래프까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생태계 같은 것이 되고야 만다.

여기에 각종의 사회지표를 표시하는 그래프는 우리의 직업만큼이나 종류도 많고,그 입장도 가지각색이다.불평등지수, 스트레스 지수, 뭐 좀 낡았지만 엥겔지수까지... 이름이나 형태는 천차만별이지만, 뾰족하고 불안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신경증적 증상들을 내포하고 있다.

모름지기 형상은 그 안의 내용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이 말은 반대로 안의 내용이 밖의 형상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뜻일 게다.그래서 사람의 얼굴마다 인품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겠다.가끔 각 나라의 행복지수라는 것을 조사하는데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의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참고로 올해 3월 유엔 지속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각 나라의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복지 선진국 노르웨이가 꼽혔고 우리나라는 조사국 155개국에서 56위를 차지했다.선정지수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높게 나온 행복도는 조금 생경스러울 정도이다.지금 우리나라 시민들의 얼굴을 이 행복지수에 빗대어 그린다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아마도 소득간,세대간,지역간 편차를 가리기에 급급하여 애매한 미소를 날리는 얼굴쯤이 되지 않을까.실상 이런 얼굴은 최근 100여년의 급격한 변화에 소화불량이 걸려버린 수렵채집인, 호모 사피엔스 종족의 묵지근한 애매함과 오버랩 된다.

유사 이래 어찌 곡선만으로 세상이 치장되겠는가만,직선은 한편으로 효율이고 속도를 의미했다.특히나 도로는 태어난 역사적 사명에 부합이나 하듯이 구절양장의 모든 고개마다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었다.아찔한 높이의 직선은 무슨 활주로처럼 뻗어 자기로 인해 벌어들인 시간이나 질주본능 충족에 대한 보상을 시위하는 듯 웅장하다.세상이 예각화 되는 데에는 또 이렇게 나름의 정당성이 있는 것이다.로마의 정방형 계획도시는 지금까지도 롤모델이 되는 중이지만 곡선과 다르게 직선은 사실 인위(人爲)의 기반위에서 시작 되었던 것이다.엄밀히 타원의 우주에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의 성취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잠깐이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살아있는 것들의 태반이 다 곡선인 것을 알 수 있다.육해공 동물들이나 곤충들이 그러하고 나뭇잎이나 꽃들의 모양도 그렇거니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나무조차도 둥그런 원기둥 위에 가지를 넓게 벌린 성찬인 것이다.

세상이 둥글어도 둥글어도 개울가에 널린 조약돌이 모진 물살에 씻겨 그랬던 것처럼 오죽하면 눈물조차 둥근 것인가.기실 둥글기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구부터가 그렇다지만 너무 커서 현실감이 없다면 아주 작은 초미세 세포핵조차 원형을 띄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이제 와서 직선이니 곡선이니 떠드는 일 자체가 ‘과거를 묻지 마세요’가 된 것 같지만, 요는 거기 사는 생명들의 행복이요, 만족이요, 존엄일 것이다.요컨대 행복은 늘 완만했다는 것이지만 또 현대는 영악하여 사각이나 오각의 사나운 각진 건물만을 내놓지는 않는다.그리하여 우리나라 최고높이로 등극한 제2롯데월드는 애써 늘씬한 포탄을 닮은 것이고,각종의 체육스타디움도 둥근 돔의 외형을 갖게 되는 것이다.어쨌거나 가난도 정(情)도 귀한 시절이 됐다.가난대신 좌절이나 분노가,정 대신 아부나 거래가 자리 잡는 요즈음, 억지로라도 곡선을 닮아가는 연습을 하자.하지만,세상의 모든 선들 중에 이선처럼 넘기 어렵고, 간질간질하고 지금은 찾기 어렵게 된 선도 없을 것 같다.그것은 바로 두 열혈남녀가 자신들의 의지인 듯 의지 아닌 제발 그러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건 슬로건이다.“이 선을 넘지 마시오.”

▲ 최삼경
▲ 최삼경
강원도청 대변인실 근무. 북한강생명포럼 이사. 저서로 한국 소설 49편의 강원도 배경지를 여행하며 쓴 산문집 ‘헤이~ 강원도’가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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