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여년 전 낯선땅에 일군 첫 마을 … 모두 떠난곳 외로운 비석만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 시작
이주행렬 급증 ‘포시에트’에 정착
최초의 고려인마을 ‘지신허’ 형성
1937년 강제이주 후 폐허로 변해
2004년 가수 서태지가 비석 헌정
최근 한·러교류의 전초기지로 떠오른 블라디보스톡은 고려인의 생애를 생생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블라디보스톡에서 남우수리지역 방면으로 국도 189호선을 타고 250㎞ 가량의 거리를 승용차로 3시간여 달리면 러시아 한인 이주역사의 시원지인 포시에트만에 도착한다.1863년 당시 조선인들은 월경을 금지했던 국법을 어기고 두만강을 건너 노브고로드만 연안의 포시에트 바닷가에 첫 발을 내디뎠다.이곳은 현재 러시아 국내에서 채광한 석탄들을 취급하는 산업항으로 변모했다.
우리나라의 면단위 행정구역인 포시에트에는 조선인들이 정착하면서 사용한 농기구와 생활도구들을 전시한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박물관 구조는 100㎡ 규모의 크기에 맷돌,쟁기,다리미 등 우리민족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전시물이 보관돼 있다.포시에트만에서 오던길을 되돌려 10㎞ 안팎 거리의 크라스키노 길목에 ‘비노그라드노예’라는 지역에 도착한다.이곳이 두만강을 건너온 조선인들이 처음 ‘한인마을’을 형성한 ‘지신허’(Tizinkhe)이다.지신허는 러시아와 중국 훈춘의 국경지대에 위치해 평소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출입 통제소에서 지신허 마을터까지 가는 길은 비포장에 안내표지판 조차 없어 현지인의 안내가 없다면 쉽게 찾기 어려운 길이었다.
취재진은 다시 고려인의 시원지 ‘지신허’를 떠나 아리랑이 불려진 연해주 북부지역으로 향했다.현지안내를 맡은 이현창 러시아블라디보스톡한인회 이사는 “러시아 연해주에 정착한 조선인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하루하루 힘겨운 여정을 이겨내면서도 일종의 해방구를 찾은 감정이었을 것”이라며 “비옥한 토지를 개척하고 힘겨운 삶을 이겨낸 한민족의 혼이 담긴 현장이 바로 연해주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연해주/박창현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