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포로가 부르던 애잔한 가락에 아리랑 흔적 남다
1차대전 당시 고려인 포로 5인
잡가·타령으로 전승 사실 확인
서울올림픽 이후 남한과 교류
2009년 고려인문화센터 개관
연해주 역사관·공연예술단 운영

▲ 지난 2009년 10월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건립된 고려인문화센터는 고려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관을 운영해 지역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우수리스크/박창현
▲ 지난 2009년 10월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건립된 고려인문화센터는 고려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관을 운영해 지역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우수리스크/박창현
■연해주 아리랑 전승양상

아리랑은 시대와 이념을 초월한 한민족의 상징적인 노래이다.구한말 통치계급의 횡포와 굶주림에 못 이겨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면서 겪은 생활상과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 등도 아리랑 가사 속에 전해지고 있다.고려인들이 처음 러시아에 정착한 연해주 일대에 전해진 아리랑 기록은 자세하게 남아있지 않다.이는 1800년대 후반 주로 함경도 지역에서 러시아 연해주에 이주·정착하기 시작한 영향이 크다.함경도에서 구전되는 아리랑이 많지 않다 보니 연해주에 전파된 아리랑도 그만큼 전승기반이 취약했다는 해석이다.그나마 제1차 세계대전 당시독일군의 포로로 잡힌 고려인의 아리랑은 연해주에 전승되는 아리랑의 흔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진용선 아리랑박물관장이 채록한 당시 아리랑은 다음과 같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어라 노다가자

아리랑 고개에 집을 짓고
오는이 가는이 정들어주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어라 노다가자(김 그리고리)

이 아리랑은 1916년 가을과 1917년 봄, 독일 프로이센 포로수용소에서 김 그리고리(Kim Grigori,한국이름 김홍준·당시 27세) 등 조선인 다섯명이 노래를 불렀다.이들은 1860년대 조선을 떠나 연해주에 살다가 1차대전 당시 러시아 군인으로 참전해 독일군 포로가 된 한인들이다.김 그리고리는 연해주 우수리스크 농부 출신으로,자신의 앞날 조차 모르는 암울한 상황을 아리랑의 곡조에 맞춰 애잔하게 불렀다.진용선 관장은 “독일포로가 된 김 그리고리 등이 남긴 아리랑은 서울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불리던 경기자진아리랑을 바탕으로 한 아리랑이다”며 “아리랑이 처음 러시아에 전해질 무렵에는 ‘민요’라는 명칭 보다는 ‘잡가(雜歌)’나 ‘타령(打令)’ 형식으로 전승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해주 고려인문화센터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사회는 구 소련이 붕괴되기 시작한 1990년 이전까지 남한 보다 북한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히 이뤄졌다.문화예술계 역시 노래,무용 등을 북한 출신 강사들에게 배워 전체적으로 북한식 공연색채가 두드러진다.고려인사회가 남한사회와 예술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본격적인 물꼬가 열리기 시작한 데 이어 1990년대 소련의 붕괴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이 분리독립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후 정부나 자치단체 차원의 교류도 활발히 진행됐지만 민간예술단체의 교류도 다양하게 펼쳐졌다.이중 연해주 고려인을 대표하는 문화예술활동은 ‘고려인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와 연령층으로 나눠 펼쳐지고 있다.

고려인문화센터는 1863년 시작된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정부와 개인후원자들의 성금을 모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2009년 10월 개관했다.이곳에는 발해시대와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을 비롯해 다목적 공연장,한글교실을 운영하는 교육문화센터,도서관,아리랑가무단,고려신문,고려인단체 사무실 등 연해주 고려인들의 정보와 활동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랑방으로 운영되고 있다.특히 주요기능 중 하나가 아리랑을 비롯한 공연예술단 운영을 들 수 있다.공연의 기획과 연출은 고려신문 편집장을 겸임하고 있는 고려인 4세 김발레리아씨가 맡아 지도하고 있다.

고려인문화센터는 어르신과 청소년들이 활동하는 고려가무단과 아리랑무용단으로 나눠 활동하고 있다.이들 단체는 연해주 지역 아리랑의 전파통로이자 전승교육이 이뤄지는 교육센터라고 할 수 있다.이 때문에 주로 불려지는 노래는 고려인들의 애잔한 감정과 신명나는 가락을 동시에 지닌 아리랑을 빼놓을 수 없다.요즘에는 한국 가요인 ‘백년인생’ ‘내 나이가 어때서’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박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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