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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이주 80년, 아리랑 로드를 가다] 8. 에필로그

민족 문화·정신 전파한 길 ‘아리랑로드’ 역사적 보존 필요
“강제이주 고려인 정체성 변화
그들만의 정서 깃든 아리랑 전승
고향에 대한 그리움· 동경 담겨
동포 점차 사라져 자료수집 시급
후손 위한 가사집 제작도 필요”

박창현 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올해로 강제이주 80년의 기록을 쓰고 있는 고려인들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 고단한 삶 속에서 희망의 노래,아리랑을 불렀다.그림은 강제이주 80년의 역사와 고려인들을 함축해서 표현했다. 일러스트/조영길
올해로 강제이주 80년의 기록을 쓰고 있는 고려인들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 고단한 삶 속에서 희망의 노래,아리랑을 불렀다.그림은 강제이주 80년의 역사와 고려인들을 함축해서 표현했다. 일러스트/조영길

올해로 강제이주 80년의 역사를 기록한 고려사람들은 한민족의 발자취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로 확산시킨 주인공이다.세찬바람과 흙먼지가 날리는 허허벌판에 물길을 내고 볍씨를 뿌려 새생명을 움트게 했던 고려인들의 모진 삶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민족성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무엇보다 고려인들을 통해 주목할 점은 그들의 모진 인생역정 자체가 우리 민족사에서 아무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점이다.그 길에는 사람이 흘러갔고 ‘한민족의 정신’ 아리랑이 녹아들어갔다.이른바 ‘아리랑 로드’(Arirang Road)를 만든 산증인인 것이다.

1863년 굶주림에 못이겨 두만강 너머 러시아 연해주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은 오늘날까지 한세기 동안 고향을 떠난 그리움을 아리랑으로 달래고 있다.생존을 위해 러시아 땅을 밟은 한인부터 일제 강점기 강제 징집된 사할린 한인,모스크바,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우크라이나 등으로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에 이르기 까지 그들의 삶 속에는 기쁠때나 슬플 때나 아리랑의 곡조가 함께 했다.아리랑이 있었기에 고단한 삶을 ‘아리랑 고개 넘어가듯’ 이겨낼 수 있었고 한민족의 자부심을 간직할 수 있었다.어찌보면 아리랑은 황무지에서 굶주림을 이겨낼 수 있었던 ‘그들만의 밥상’이었는지 모른다.

본지 취재진은 지난 8월부터 아리랑로드를 찾아나섰다.국내 안산과 광주 등에 거주하는 고려인마을뿐 아니라 강제이주 역사가 서려있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와 알마티까지 ‘강제이주 80년 고려인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아리랑’의 현장을 잠깐이나마 엿 볼 수 있었다.하지만 취재진에 앞서 30여년 가까이 아리랑의 길을 걷고 있는 진용선 아리랑박물관장의 기록물이 있었기에 이번 취재도 가능했다.진용선 관장은 지난 해 9월 20여년간 고려인들의 아리랑을 조사하고 채록한 기록물을 묶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아리랑 연구’를 발간했다.이 책은 사실상 고려인 아리랑을 집대성한 국내 첫 전문 연구서이다.이어 올해는 지구촌 곳곳에 녹아들어 다양한 장르로 창조적으로 발전을 이어가고 있는 아리랑의 기록을 ‘아리랑로드’라는 책자로 내놓았다.진용선 관장이 전하는 고려인아리랑을 들어봤다.

-‘아리랑 로드’는 어떤 길인가.

▲ 진용선   아리랑박물관장
▲ 진용선
아리랑박물관장
“1990년대 아우라지에서부터 서울 마포나루와 광나루 일대까지 정선 뗏목이 흘러갔던 남한강물길주변의 아리랑을 찾아다녔다.여기서 그치지 않았다.일제의 수탈을 피해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중국과 러시아 땅에 정착한 한인들,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한인들을 만나 때론 슬픈 듯 애잔한 아리랑,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살아있는 아리랑을 만났다.아리랑을 찾아 걸을 때 그길은 다름아닌 ‘아리랑길’ ‘아리랑 로드’였다.실크로드(Silk Road)가 동서양의 문물이 오고간 비단길이었다면 아리랑로드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정신을 전파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인 아리랑의 의미는.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역사는 전형적인 ‘디아스포라’의 기구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어렸을 때 사연도 모른채 강제이주 열차에 실려 부모를 따라간 이들,아픈 역사를 귀담아 들었던 그 후손들은 여전히 유랑하고 있다.이들의 디아스포라는 아직도 진행 중인 셈이다.이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디아스포라 아리랑’이라고 한다.이산의 과정에서 정체성의 변화와 현지인과의 갈등을 거치면서 우리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승됐기 때문이다.고려인의 고진 삶 속에 웅어리진 감정이 우리의 민족성과 현지인들의 문화특성과 더해져 꾸준히 창조되고 그들만의 정서에 맞는 가락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때문에 아리랑은 여전히 고향과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고난을 극복하고 살아온 세월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디아스포라 음악이다.”

-중앙아시아 아리랑연구의 과제는.

“그동안 고려인이 거주하는 러시아 연해주와 사할린,중앙아시아를 다니며 아리랑이라는 인연으로 많은 동포를 만났다.이들에게 강제이주의 기억과 아리랑 노래를 채록할 수 있었다.하지만 점차 이들이 운명을 달리하고 있어 있어 더 늦기 전에 보다 자세하고 다양한 자료수집이 시급한 상황이다.더불어 올해 아리랑을 비롯한 우리의 노래를 러시아어로 번역한 가사집을 제작했는데 큰 관심을 보였다.점차 한국어를 잃어가고 있는 고려인 후손과 4세대 이후 청소년들을 위한 노래 가사집 제작도 필요하다.아울러 고려인과의 문화적교류도 더욱 확대해야 한다.”

진용선 관장은 끝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시베리아 6000여㎞를 횡단한 아리랑길은 서글픈 아리랑이 아니라 희망의 아리랑을 전하는 길이자 세계인이 즐기는 노래의 교역로가 될 것”이라며 “남북과 고려인을 비롯 세계 곳곳에서 살고 있는 해외동포 700만명의 마음은 아리랑의 길에서 하나로 묶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끝>

박창현 chpark@kado.net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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