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미국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 의장이 은퇴를 선언했다.48세 전도 유망한 정치인의 돌연한 퇴장이 많은 여운을 남긴다.미국 하원의장은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어 국가서열 3위에 해당하는 막강한 자리다.그 엄청난 지위에서 스스로 물러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그런데 그가 11월 중간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내년 1월 임기를 마친 뒤 세 아이가 있는 가족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모두가 앞을 보고 달려가는데 정상을 눈앞에 둔 정치인이 반드시 그러할 이유 없이 하산을 결정한 셈이다.한 번 발을 들여 놓으면 스스로 그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정치판의 생리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이런 흐름을 과감히 거스르고 그만의 판단을 한 것이 폴 라이언 의장의 결단이다.한 치도 남에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내 주는 법이 없는 것이 정치인의 생존법이다.

정계를 떠나는 것은 강제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대체로 불·탈법에 연루돼 의법 조치되거나 연임 제한 때문에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경우다.건강에 문제가 있다거나 특별한 개인사정 때문에 정계를 떠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이유는 다르지만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불가피성이 있다.자기 의사와 반하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강제 강판(降板)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살아남는 것만이 지고(至高)의 선으로 인식되는 것이 정치의 세계다.이런 점에서 폴 라이언 의장의 퇴장은 반전이다.그는 1998년 28세의 나이로 위스콘신 주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내리 10선의 관록을 쌓은 차세대 주자다.2015년 미국 역사상 124년 만에 40대 하원 의장에 오른 것은 그의 위상을 대변한다.그의 결단 배경이 가족과의 평범한 생활을 위해서라는 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는 회기 중엔 워싱턴에 머물고 주말에 1100㎞ 떨어진 위스콘신을 오가는 생활을 해왔다.앞으로 10대의 세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겠다고 한다.그의 비정치적 선택에 오히려 많은 정치적 함의가 담겨있다고 본다.홀연 대오를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그의 모습에서 가족의 의미와 삶의 가치,정치의 여백을 생각하게 한다.그는 물러남으로써 더 많은 기회를 가질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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