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새로운 시작] 접경지역을 가다

▲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철원 전방지역은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영농준비가 한창이다.
▲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철원 전방지역은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영농준비가 한창이다.
“기대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야.변방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정말 기대되는 건 맞아”

1953년 정전이후 65년을 전쟁의 공포를 안고 살아온 강원도 접경지역 주민들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접경지역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화천의 한 마을 길목에서 만난 80대 주민은 “하루아침에 뭐가 되겠어”라면서도 “죽기전에 통일을 볼수는 없어도 왕래만 할수 있어도 그게 어디냐”고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남북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25일 접경지역을 찾았다.

▶  철원 - 경원선 복원 등 획기적 발전 기회
▶  화천 - 군장병 외출·외박 확대 기대감
▶  양구 - 두타연∼금강산 도로 개설 여론
▶  인제 - 지역 특성 맞춤 협력사업 준비
▶  고성 - 금강산 관광 재개 의제채택 관심

■ 철원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평화체제 가시화 등 굵직굵직한 전망이 쏟아지자,가장 넓은 면적이 북한과 접해 있는 철원지역 주민들은 장밋빛 전망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변화를 기다려 보자는 입장이다.철원평야에서 만난 한 농민은 “그동안 남북한이 수많은 협정과 만남을 통해 통일은 안되더라도 남북한 소통이 금방이라도 될 것처럼 얘기했다가 무산된 적이 많아 차분하게 지켜보자는 분위기다”고 전했다.또 다른 농민은 “통일과 평화의 정착은 꼭 필요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기대감이 없는 건 아니다.회담에 따른 평화체제가 구체화 되면 통일 1번지인 철원군은 획기적인 발전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철원군미래전략기획위원회 이근회 회장은 “강원도에서도 변방이었던 철원군은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 획기적인 발전의 호기를 맞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경원선 복원과 철원평화산업단지 조성 등 각종 현안사업이 조기에 추진될 수 있도록 주민들의 역량을 한데 모을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김영규 철원향토사연구소장은 “올해가 궁예왕의 태봉국이 멸망한 지 1100년 되는 해다”며 “남북의 철원군이 현실적인 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지자체 차원의 교류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 화천

주민들은 남북관계의 변화를 앞두고 큰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특히 각종 규제로 묶여 있는 접경지의 족쇄를 풀 시발점이라며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한편으로 접경지 경기에 변수가 될 국방개혁 방향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민들은 “화천지역이 그동안 접경지라는 굴레에 갇혀 ‘국토의 변방’으로 소외됐으나,남북관계가 풀리면 한반도의 중심부로 새로운 도약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김충호 화천군번영회장은 “남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해소돼 접경지역 규제가 대폭 풀릴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화천군 상서면 산양리 사방거리에서 북측 내금강으로 가는 길이 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의 5번 국도를 북측으로 연결할 교통 인프라 구축도 미리 기대해본다”고 했다.

주민들은 군사적 긴장 완화에 따른 군 장병들의 외출 외박 확대에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지역 상가의 주 고객인 장병들이 자유롭게 지역에서 소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지역 경기도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러나 앞으로 추진될 국방개혁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시하고 있다.주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규제 해제다.군사보호구역 등 규제로 고통을 받아온 주민들은 “각종 규제를 최소화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없애고, 지역을 효율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 양구 두타연 생태탐방로 곳곳에는 지뢰표시가 남아 있다.
▲ 양구 두타연 생태탐방로 곳곳에는 지뢰표시가 남아 있다.
■양구


25일 찾은 양구군 두타연에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화의 기운이 피어나고 있다.금강산가는 최단 길이자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두타연은 지난 2004년 일반관광이 허용되면서 관광객이 매년 급증해 최근에는 연간 10만명 이상이 찾는 양구지역의 대표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아직도 두타연 트레킹 코스와 생태탐방로 곳곳에는 지뢰 표시가 남아 있는 등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고 있다.양구지역 주민들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한 평화교류의 물꼬가 트이게 되면 최우선적으로 두타연을 통해 금강산 가는 길이 우선적으로 뚫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타연은 1953년 휴전선이 그어지고 이듬해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정해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순수한 신비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지난 1998년 고성을 통해 금강산 여행이 시작되면서 외금강 코스는 개방됐지만 양구에서 최단거리인 내금강은 허가되지 않았다.두타연에서 금강산까지는 30㎞ 내외로 과거에는 도보로 왕복이 가능했던 곳이다.그러나 지금은 휴전선 철책이 가로막고 있어 코 앞의 금강산을 가슴속으로만 상상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과거 일제시대에 개설된 31번 국도도 이번 평화의 바람을 타고 우선적으로 개통돼 내금강까지 이어지는 관광도로가 개설되야 한다는 것이 양구지역의 여론이다.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두타연과 31번 국도를 통해 금강산 가는 길이 개통이 되면 연간 수십만명의 관광객들이 두타연을 찾아 금강산으로 향할 것이다.전현자 관광지운영담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광교류가 확대된다면 군부대 철책 통문으로 막혀 있는 31번 국도의 민통선 안쪽인 양구군 문등리까지 관광객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국방부와 협의 예정중이다”고 말했다.

■인제

25일 인제지역 최북단 마을인 서화면 서화2리.완연한 봄날씨 속에서도 도로에는 병력을 태우고 이동하는 군용차량이 심심치 않게 목격돼 접경지역임을 실감케 했다.들녘에는 농사를 준비하는 주민들이 간간히 보일 뿐 평소와 같이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남북정상회담 추진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평화체체 구축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이기용(84)씨는 “김대중 정부 이전만 해도 면소재지인 천도리에서 서화2리까지 5㎞도 안 되는 구간에 통제소 4곳을 통과해야 했다”며 “남북이 종전을 선언하고 완전한 평화를 이룰 경우 접경지역에서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부 주민들은 지난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져 지역발전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장삼봉(56·음식업)씨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여전히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활은 나아진 것이 없다”면서도 “평화가 정착되면 접경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이번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남북간 항구적 평화가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대응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인제군 관계자는 “남북간 평화체제 구축이 실현될 경우 교류협력사업도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로서는 구체화 된 계획이 없지만 지역특성에 맞는 의제발굴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고성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고성지역 주민들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27일 진행될 남북정상회담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와 동해북부선 철도 복원 등 지역과 관련된 주요 현안이 의제로 채택될 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동해안 최북단 마을인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주민들도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주민들은 이번 기회에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 지난 10여년간의 암흑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했다.금강산 관광은 지난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으로 중단됐고,올 7월이면 중단 10년째를 맞는다.관광중단은 고성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금강산을 오가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했던 식당과 상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폐업을 했다.금강산 관광객에게 크게 의존했던 명파리 마을은 그야말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명파리 주민 이종복(63)씨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10여년 동안 지역 주민들은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희망과 실망을 반복하며 살아왔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 그동안의 피해에 대한 조금의 보상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특히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각종 규제가 해소될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그동안 접경지역이라는 지리적 한계로 인해 각종 개발이 제한되고 국가 정책에서 소외돼 왔으나 남북관계가 풀리면 지역발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이강훈 고성군 번영회장은 “고성군민들은 각종 규제와 남북간 정세 변화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어 왔지만 이를 삶의 일부로 감수하고 살아왔다”며 “접경지역에서 반세기가 넘는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고성 주민들을 위한 국가의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 특별취재반/이수영·이재용·안의호·최원명·남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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