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이 본 남북정상회담
이상국 시인

나는 2007년 6·15 공동선언실천 7주년을 기념하는 남측 위원회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짧은 사흘간의 일정이었다.그해 10월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4개월여 전이었다.당시는 남북교류가 활발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갈 때였음으로 그 방문이 내게 주는 의미를 그렇게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그러나 뒤를 이은 이명박 정권 집권초 금강산 관광객 사망사건을 계기로 남북이 10여년간 문을 닫아걸고 지내는 동안 나는 다시는 내생애에 북한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에 절망해야 했다.그래서 세계를 다 돌아도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없는 평양 방문은 내 생애 단 한번 뿐의 기회였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그렇지만 역사는 그러한 나의 절망과 망상을 허용하지 않았다.

2018년 4월27일 오전 9시30분.전 세계의 눈과 귀가 지켜보는 가운데 판문각을 내려온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영접을 받으며 분단과 휴전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나는 숨이 멎을 듯한 긴장과 흥분이 아니라 기쁨과 반가움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북한 정상으로는 최초의 남으로의 월경이었다.이어 김정은 위원장의 제의로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다시 보여준 월남과 월북의 상징적 의미는 군사분계선이 넘지 못할 마의 선이 아닌 콘크리트 구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도 남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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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의장대의 열병이 있었고 국가적 예우의 환영식은 정중하고 화려했다.그것은 남북회담이 의미하는 국제적 관심과 민족적 열망의 문을 여는 점화와도 같은 것이었다.이윽고 회담장 평화의 집에 들어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한 손에는 핵이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평화가 들려 있었다.평화의 집은 ‘평화’라는 예언적 이름을 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그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망령을 매장하는 세계사적 사건이자 60년 넘게 지속된 정전의 기나긴 대치를 최종적으로 끝낼 수 있는 민속사적 드라마의 시작이었다.더구나 생중계로 우리의 명운을 가르는 역사에 실시간 동참하고 있다는 현장감은 실로 벅차고 감격스러운 것이었다.오전 10시30분 쯤 남북 대표단은 회담 테이블에 앉았다.그것을 세계가 지켜보고 있었다.

흔히 회의는 춤춘다고 한다.그러나 그들은 춤추지 않았다.남쪽 정상은 겸허했고 북쪽 정상은 진지했다.그들에게는 통역이 필요없었다.남북은 비핵화와 종전,평화와 공존에 동의했고 그것은 우리 민족과 세계의 여망을 담아내는데 부족하지 않았다.그리고 대표단은 두차례의 회담을 마치고 만찬장으로 향했다.때가 되면 사람은 먹어야 한다.그리고 오늘 같이 큰일을 한 날은 평양냉면이든 서울설렁탕이든 든든하게 먹는게 좋다.그리고 후일을 기약하며 문배주로 자축과 위로의 건배사를 남기는 것도 좋은 일이다.

▲ 이상국 시인이 27일 속초 교동 자택에서 남북 정상회담 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 이상국 시인이 27일 속초 교동 자택에서 남북 정상회담 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때로 역사는 상상을 초월한다.국가의 탄생이 그렇고 모든 전쟁의 역사가 그렇다.4~5개월 전만 해도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핵단추의 위세에 맞서 화염과 분노의 협박을 마다 않던 북미간의 관계도 그렇고 북한의 핵 실력을 겁내는 게 아니라 태평양으로 쏘아올린 미사일이 기술 부족으로 자국에 떨어지는 걸 걱정한다는 우스갯거리를 선사하며 북한에 기대어 재무장을 기도했던 일본의 허둥대는 모습 또한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다.과거 우리의 역사와 진로에 가담했던 당사국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기의 회담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한편 그러한 외부적 이해관계도 문제지만 오랜 기간 피차 적대와 위협을 정치에 이용하는 동안 우리 안에 일상화되고 내면화된 분단의식 또한 우리가 지고가야 할 우리들의 무거운 짐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공자는 논어 안연(顔淵)편에서 정치 지도자가 식량과 무기와 신뢰 세가지 중 불가피하게 버려야 할 게 있다면 무엇이냐는 자공(子貢)의 질문에 첫째가 무기고 다음에 식량이라고 했다.신뢰가 부국강병의 기본이라는 것이다.그러나 2500여년전 왕이 곧 국가였고 백성의 숫자로 나라를 평가했던 시대와 정권이 곧 국가가 아닌 근대국가체제에서 국민이 굶주리고 외적을 막을 힘이 없다면 그런 나라가 온전할 리 없다.북한은 1인 체제이자 권력을 세습하는 전근대적 국가이다.고립과 제재,위협과 무시 속에 이른바 고난의 행진을 하면서도 무기를 만들었고 이제 그 무기로 식량을 확보하고 체제를 보장 받으려는 전략은 공자를 무색하게 하는 무기의 아이러니이자 역설이다.그것이 고립과 제재를 벗어나려는 고육지책이든 통 큰 양보이든 남북,북미협상을 통해 지구상의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근본적인 변화라면 북의 그러한 전향적 정책이 부디 성공하기를 바랄 뿐이다.

복사꽃,살구꽃은 졌지만 한반도의 봄은 이제부터다.우리가 누구인가!식민지,해방,분단,전쟁,혁명,쿠데타,군사독재,광주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문자 그대로 내외의 질곡을 다 겪고도 오뚝이처럼 일어선 국가이다.이제는 남의 간섭이나 눈치를 안보고 한반도에서 번영해야 할 권리가 있다.그러나 살얼음을 딛는 것처럼 조심스럽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어떠한 난관과 함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그런 실패와 좌절을 겪어왔고 내외의 평화와 공존을 원치 않는 세력도 엄존하고 있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남북 회담에 이은 북미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어떤 형태로이던 북한과의 공존을 위한 평화체제가 정착돼 민족의 새로운 활로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나는 정치가도 아니고 시사평론가도 아닌 한낱 시인이니 이쯤에서 시인으로 돌아오자.나는 언젠가 새마을호를 타고 옥천으로 시낭송을 하러가는 길에 깜박하고 영동까지 가서 낭패를 본적이 있었다.바라건데 그리 머잖은 날에 동해북부선이 이어져 한날 속초에서 기차를 타고 단천에 가서 냉면이나 먹고 온다는게 정신을 어디두고 원산에 가 내리는 일이 안벌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거기서 하룻밤을 묵어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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