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길 '동해북부선'을 열자] 3. 동해북부선 모항 품은 속초
1937년 간성-양양구간 개통
어항·관광항·적출항 역할 시작
대토목공사로 항구모습 갖춰
한국전쟁이후 피난민 정착

▲ 복원된 옛 속초역 옛 동해북부선의 종착역이자 출발역이었던 양양역과 원산역 사이 모항역할을 한 속초항을 옆에 둔 속초역 자리는 지금 대규모 상업·주거시설이 들어선 주차장이 됐다.속초시립박물관에는 옛 동해북부선 속초역사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놓았다.  박상동
복원된 옛 속초역 옛 동해북부선의 종착역이자 출발역이었던 양양역과 원산역 사이 모항역할을 한 속초항을 옆에 둔 속초역 자리는 지금 대규모 상업·주거시설이 들어선 주차장이 됐다.속초시립박물관에는 옛 동해북부선 속초역사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놓았다. 박상동
#사라진 영광 재연은 언제…옛 동해북부선 모항 속초항

속초항은 원산항과 함께 동해북부선 모항 역할을 했다.강원도 동해안의 대표적인 항구인 속초항은 어항,철광석 적출항,관광항 등 여러가지 기능이 합쳐진 무역항이다.속초시 중심가에 위치하며 지역주민들은 청초호내에 위치한 부두를 속초항,바다 쪽 외항을 동명항이라 구분해 부른다.속초항은 동해안에서 파도를 피할 수 있는 석호가 발달된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 항구이지만 원래는 큰 항만은 아니었다.본래 연근해 어장의 풍부한 수산자원을 얻기위해 청초호 연안에 어촌이 형성되면서 어항으로 발전했다.1905년 동해연안항로가 개설돼 선박의 기항지로 이용됐다.

이후 1937년 양양철광산의 개발로 동해북부선 간성-양양구간이 개통되면서 속초항 인근에 속초역이 들어서면서 속초는 본격적인 항구도시로 도약하기 시작했다.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1941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양광업소에서 채광을 시작해 속초항을 통해 일본 야하타 제철소로 운반했다.또 온유(정어리)가 동해북부지역에서 대량으로 잡혀 일본으로 수출,태평양전쟁 당시 그 기름을 군수물자로 사용하면서 동해북부선에서 없어서는 안될 어항이 됐다.

▲ 철길위에 지은 집 옛 동해북부선 열차가 다녔던 철길을 임대해 그 위에 집을 짓고 수십년째 생활하고 있는 권만수(69·속초 대포동)씨가 집 안에 그대로 두고 있는 옛 철길의 흔적인 콘크리트 옹벽 구조물을 가리키고 있다. 박상동
철길위에 지은 집 옛 동해북부선 열차가 다녔던 철길을 임대해 그 위에 집을 짓고 수십년째 생활하고 있는 권만수(69·속초 대포동)씨가 집 안에 그대로 두고 있는 옛 철길의 흔적인 콘크리트 옹벽 구조물을 가리키고 있다. 박상동
1933년부터 10년이 넘도록 진행된 수축공사로 속초항은 동해안을 대표하는 항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당시 진행된 속초항 수축공사(1기)는 현재 동명동 일대 해안인 외항과 청초호 내항을 선박이 오갈수 있도록 수로를 개설하는 사업이었다.대토목 공사로 한때 600명이 넘는 인부가 공사에 동원돼 많은 사람들이 속초로 몰려들었다.이 공사로 속초항에는 최초로 등대가 설치되기도 했다.1935년 11월24일 양양군 도천면 속초항 좌편에 등대를 신설해 점등을 했다고 조선총독부 관보(1935년 12월4일자)에 나와있다.속초항 제2기 공사는 1939년부터 개발된 양양철광의 반출항으로 속초항을 활용하기 위해 추진됐다.2기 공사는 계속 지연돼다 1941년 6월 속초항 제2기 공사가 진행됐다.해방직후에는 북한 치하에 있던 지역이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동해안에서 어업을 주도하던 함경도 출신의 피난민들이 속초 아바이 마을에 터를 잡으면서 속초항이 큰 항구로 발전했다. 이 호·이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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