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길 '동해북부선'을 열자] 3. 동해북부선 모항 품은 속초
양양∼원산 중간 기착지 속초역
동해북부선 역사 중 최장 잔존
한국전쟁 중 대규모 폭격 피해
쌍천다리 인근 콘크리트 폐교각
100년 가까이 된 옹벽만 남아
남북분단 상처 입은 속초 역사
속초시립박물관에 옛 모습 재현

양양의 철광석을 반출할 목적으로 1937년에 개통된 동해북부선은 안변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릉,삼척,울진,포항까지 철도를 연장해 동해남부선과 만나 부산까지 연결할 계획이었으나 1945년 해방으로 공사가 중단됐다.일제강점기 동해북부선은 사업상 9개의 과정을 거쳐 총 29개의 기차역이 만들어졌다.이 가운데 14개는 간이역이며,역원 무배치 간이역은 속초에 있던 대포역을 비롯 천진,공현진,현내,초구 등 다섯 정거장으로 이뤄져 있다.과거 양양~원산을 동해북부선의 중간 기착지였던 속초역과 속초지역 철로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곳곳에는 일부 흔적들이 아직까지 확인되고 있다.사라진 역터에는 건물과 주차장이 들어섰고,기차가 달리던 철로는 대부분 도로에 편입,도심지로 바뀌어 현재는 차량들만이 그 위를 오가고 있다.본지 취재진이 당시를 기억하는 주민들과 원로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속초지역의 동해북부선 옛 노선을 따라갔다.



▲ 옛 속초역사 일제강점기 양양~원산을 잇는 동해북부선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던 속초역사는 미군정(1951년 8월~1954년 11월) 당시 미군항만사령부의 취사장과 댄스홀로 사용되기도 했다.사진은 1953년 당시 속초역 전체 모습. 사진제공=속초시립박물관(레버렛 기증)
옛 속초역사 일제강점기 양양~원산을 잇는 동해북부선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던 속초역사는 미군정(1951년 8월~1954년 11월) 당시 미군항만사령부의 취사장과 댄스홀로 사용되기도 했다.사진은 1953년 당시 속초역 전체 모습. 사진제공=속초시립박물관(레버렛 기증)

# 쌍천 교각·설악산 입구 굴다리

속초지역 동해북부선 철길의 시작지점이다.강원도 동북간에 위치한 속초시는 동쪽으로는 맑은 동해와 남쪽으로는 쌍천을 경계로 양양군과 접해있다.양양에서 속초로 넘어가는 경계에 해당하는 쌍천의 다리 인근에서는 흔적만 남아 덩쿨에 가려진 방치된 폐교각을 발견할 수 있다.맞은 편 양양방향에서도 같은 모양의 교각 구조물을 확인할 수 있다.이들 지역 경계에 쓸쓸히 남아있는 콘크리트 폐교각 2개만이 당시 동해북부선 열차가 거대한 철교 위를 달렸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팔순의 주민은 “동해북부선 열차가 쌍천을 가로지르며 달리던 기억이 난다”며 “예전에는 콘크리트 교각 15개정도가 열을 지어서 남아있었지만 90년대 초 폐교각이 일제잔재로 철거의 대상이 되면서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이곳과 500여m 떨어진 설악산 입구 지점(설악산로)에서도 동해북부선 기차가 달렸던 쌍안경 모양의 굴다리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동해북부선 열차가 다니던 이 철둑길 굴다리위는 현재 속초시민들의 쉼터로 바뀌었다.

#14개 간이역 중 하나 대포역

쌍천에서 대포항을 향하던 길에는 현재 동해콘도가 들어서 있다.콘도 뒷쪽 길로 들어선 동해북부선 기차는 다시 산자락을 타고 올라갔다고 한다.이곳 주변에서는 농로로 변한 옛 철길을 기준으로 좌우에 세워진 옹벽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점점 좁아지는 언덕길 한가운데,철길 뚝방 사이에서 임시 건물을 짓고 살고 있는 권만수(69·속초 대포동)씨를 만날 수 있었다.권씨의 집은 철도청 부지에 속해 1년에 20여만원의 임대료를 내면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권씨는 “이곳은 옛 동해북부선 철길로 아직까지 옹벽이 그대로 남아있다”며 “동해북부선 철둑과 옹벽을 벽으로 삼아 집을 지었다”고 말했다.

권씨의 말대로 집 안에서는 100년 가까이 된 동해북부선의 콘크리트 옹벽 구조물이 확인됐다.권씨의 집을 지나 언덕길을 타고 올랐던 기찻길을 계속해서 따라가다보니 저 멀리 있는 대포항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해안가를 따라 달리던 옛 동해북부선 객차의 오른쪽 창가에서도 이같은 풍경은 그대로 펼쳐졌을 것이다.이후 옛 철길이 있었던 대포초교 인근을 거쳐 도착한 곳은 한국농어촌공사 영북지사 인근 사거리.이곳에는 지금은 아무런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동해북부선 간이역 중 하나인 대포역이 있었다고 한다.

대포역에는 역무원 사무실이 있었으며 인근에는 동해북부선보다 오래된 곳 중 하나인 대포초교(1919년 개교)가 위치해 있다.이곳 주변 주민들은 당시 동해북부선 열차가 속초지역과 인접지역 학생들의 통학수단으로도 쓰였다고 증언하고 있다.현재 대포역 이후 철길은 폭이 늘어난 7번 국도에 편입됐고,이곳에서 700~800m 가량을 이동하면 속초시내로 진입,중앙시장(관광수산시장)을 거쳐 옛 속초역사로 향한다.

#분단의 상처만 남은 속초역사

프랑스식 고깔형 건축 구조의 속초역사는 1941년 동해북부선(원산~양양)이 지나는 역사의 하나로 만들어졌다.동해북부선은 사실상 양양의 철광석을 군사기지였던 원산으로 수송하려는 제국주의적 수탈의 목적에서 건설한 철도로,속초역은 양양에서 출발한 동해북부선 열차가 정차하던 기차역이었다.당시 북으로 가는 기차는 양양역을 출발,낙산~물치~속초~천진~문암~공현진~간성~현내역을 지나 통일전망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초구역,그리고 지금의 북한땅의 고성~삼일포~외금강~장전~통천역을 지나 종착역인 원산역까지 연결됐다.

취재진이 옛 속초역사 부지인 속초시 동명동 450-195번지(고려한방삼계탕 맞은편)를 찾아갔으나 이미 철거(1978년)된 지 40년이 지나고 새롭게 시가지가 조성된 탓에 이곳에서는 속초역사의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옛 속초역사 부지는 현재 2층짜리 건물과 넓은 주차장,주택 등이 들어서 있고,기차가 다녔을 철로는 이제는 차량들이 달리는 도로로 변해있었다.하지만 옛 속초역터 부근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속초역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구 역터는 지역민들에게 큰 발자취를 남겼다.인근에서 만난 주민 홍수남(80·속초 동명동)씨는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는데,단선철도가 깔린 이 도로에서 철길 위로 기차가 지나다녔다”며 “당시 속초역사는 상당히 큰 규모였고 이용하는 사람들 역시 많았다”고 회상했다.

해방이후 속초역사는 38선 이북지역에 속해 북한 통제하에 있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규모 폭격으로 철로가 파괴돼 역사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이후 속초역사는 국군이 북진할 때 화장장으로 이용됐으며 미군정 당시(1951년 8월~1954년 11월)에는 미군항만사령부의 취사장과 댄스홀로 사용되기도 했다.1956년 4월 명신고등공민학교가 들어서 불우학생의 배움터가 됐다가 1957년부터는 벽돌공장인 고려산업사가 입주했다.이처럼 과거 양양~원산 동해북부선의 중간 기착지였던 속초역사는 동해북부선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남아있었지만,지난 1878년 4월10일 결국 철거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통일을 열망하는 속초시민의 정서가 묻어나는 속초역사의 옛 모습은 속초시립박물관에 그대로 재현돼 있다.

특별취재반/이호·박주석·이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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