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창수 소설가
▲ 하창수 소설가
작가들은 이따금 현대사회가 처한 불합리하고 불안하고 불길하고 불편한 조건을 ‘집’이라는 구조에 욱여넣고는 입을 앙다문 채 노려보기도 하고,흔들기도 하고,무너뜨리기도 한다.어떤 견고한 재료들로 지어놓는다 해도 그보다 더 큰 힘이 가해진다면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집’일 테지만,그게 만약 ‘카드’나 ‘레고’로 지어져 있다면 그때 그 존재의 조건이란 얼마나 불합리하고 불안하고 불길하고 불편할 것인가.지금의 우리가 안온과 행복의 거의 전부를 의탁하고 있는 ‘집’이란,기실,언제든 속절없이 힘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카드나 레고로 만들어진 집은 아닌가.

나는 지금,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달에 가 있다는 말을 믿는 소녀가 그 달에 닿기 위해 카드를 쌓아 집을 만드는 마이클 레삭의 영화 ‘카드로 만든 집’이나 지저분한 암투와 야망과 비리가 뒤엉킨 채 살아가는 워싱턴 정계의 불안한 정치인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혹은 남루한 반지하 셋방에서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오빠를 위해 복사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안을 일상처럼 안고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윤성희의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을 얘기하고 있지만,그 실질은 지금 춘천 중도에 지어진다는 거대한 레고 하우스에,그곳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는 온갖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길한 전언들에 닿아있다.

동아시아 최초,국내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은 선사시대 유적지를 놀이시설들이 덮어버리는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지만,정작 터조차 닦이지 않은 곳에 쏟아 부어진 2000억 원에 이르는 도민의 혈세와 한 번에 수억 원의 행사비를 들여가며 무려 세 번이나 착공식을 치른 강원도 정부의 행태는 상상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의 일이다.50년에 50년을 더 얹어 무려 100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를 해주고 협약주체(영국 멀린사)의 터무니없는 요구들을 무슨 책이라도 잡힌 듯 앞서서 수용하는 ‘권리변경안’을 기립찬성으로 통과시키면서도 정보공개를 요청하는 시민들에겐 ‘비밀유지조항’을 내걸어 의혹만 부풀리고 있는 강원도의회는 입에 올리기 싫은 ‘국정농단’이란 말을 한숨처럼 내뱉게 만든다.

며칠 전,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강원도청과 강원도청 글로벌투자통상국,레고랜드 설립을 위해 강원도가 설립한 목적회사인 엘엘개발(LLD)을 대상으로 감사원에 제대로 된 감사를 청구하는 ‘공익감사 청구서’를 입수해 읽는 동안 내 입에선 줄곧 “왜?”라는 단어만 비어져 나왔다.유권자들의 지지로 3선에 이른 도지사가 왜,하루에 1435만 원도 모자라 매일 2444만 원의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추가대출도 마다하려 하지 않는 걸까? 승승장구 3선을 한 도백(道伯)이 왜,춘천의 레고랜드와 관련된 내용이 멀린사 홈페이지에서 사라진 올해에 세 번째 착공식을 강행하며 “멀린사가 3000억 원을 투자해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발표한 걸까? 박근혜정부의 폐악에 힘입어 도민의 전폭적인 지지로 도의회의 과반을 넘긴 민주당의원들은 왜,이 의문들을 밝혀내기는커녕 의혹투성이의 ‘변경동의안’을 가결시킨 걸까?

지난 월요일(12월17일),국내 4대 일간지와 도내 언론사에 레고랜드를 홍보하는 전면광고가 일제히 실렸다.하지만 레고랜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2013년 이후 불거져 나온 온갖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길하고 불합리한 ‘사실’과 ‘예상’과 ‘진단’들을 다룬 언론사는 찾아보기 힘들다.가장 눈여겨볼 얘기들을 전한 곳은 시민의 편에서 진실을 밝히는 일에 힘써온 춘천의 한 주간신문이었고,그곳이 거의 유일하다 해도 지나치진 않다.그러나 그 신문에조차,12월17일자 맨 뒷면엔 “춘천에 레고랜드가 온다!”는 전면광고가 실렸다.그날은 강원도의회 의원들이 ‘권리변경안’을 기립 통과시킨 날이었고,그 신문엔 그 행태를 비판하는 모두 일곱 개의 기사와 칼럼들이 실렸다.지금 춘천을 둘러싼 ‘레고로 만든 집’의 슬프고도 끔찍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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