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창성 서울본부장

▲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1909년 10월2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이강과 유진율이 하얼빈으로 떠나는 안중근과 우덕순을 배웅했다.우덕순이 권총 두자루와 여비 100원을 유진율에게서 건네 받은 후였다.이날 아침 8시50분 삼등 우편열차가 두 영웅의 장도를 위해 플랫폼에 대기하고 있었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까지 780㎞의 먼 길이었다.가슴속을 파고든 바람이 찼다.검은 기관차가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긴 기적을 토해냈다.유진율과 이강이 준비해온 두 벌의 두루스케(짧은 외투)를 안중근과 우덕순에게 걸쳐주며 어깨를 끌어 안았다.“지금 삼천리 강산을 너희가 등에 지고 간다!” 이강이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22일 밤 9시15분 하얼빈에 도착한 안중근 일행은 미리 주선해 놓았던 김성백 집에서 잠을 청했다.23일 아침 우덕순 그리고 통역으로 합류한 유동하와 하얼빈 시내로 나갔다.분위기를 살필 겸 지리도 익힐 겸 해서 나선 길이었다.이발도 하고 옷도 사 입었다.세 사람은 사진을 찍기로 했다.유동하는 영문을 몰랐지만 거사를 앞둔 안중근과 우덕순에게는 성스러운 예식과 같은 순간이었다.왼쪽부터 안중근,우덕순,유동하 순으로 나란히 서서 찰칵하는 찰나에 흑백 필림속 역사가 됐다.표정은 비장하기 보다는 온화했다.무엇인가 꼭 하고픈 주장을 펼쳐 보이려는 모습이다.적장을 저격한다기 보다는 동양 평화의 길을 외치려는 얼굴색이었다.

23일 밤 안중근과 우덕순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신들을 배웅했던 대동공보사 이강 앞으로 한통의 편지를 썼다.편지에는 두 사람이 지은 두편의 노래가 담겨있었다.큰 일을 사흘 앞둔 안중근의 절명시 ‘장부가’는 결연했다.‘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그 품은 뜻 크도다/때가 영웅을 만듦이여,영웅이 때를 만드는도다/동풍이 점점 차가워짐이여,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쥐도적 이토여,어찌 기꺼이 목숨을 비기겠는가/동포 동포여,빨리 대업을 이룰지어다/만세 만세여,대한독립/만세 만만세,대한동포’

1909년 10월26일 아침.안중근은 일찍 일어나 양복으로 갈아 입은뒤 권총을 지니고 하얼빈역으로 갔다.오전 9시쯤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특별열차가 미끄러져 들어와 멈췄다.경례와 군악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안중근은 큰 걸음으로 역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러시아 관리들 한 가운데 얼굴은 누렇고 수염은 흰 조그마한 늙은이 하나가 서있었다.그를 향해 3발의 총성이 통쾌하게 울려 퍼졌다.이어 3발의 총성이 차가운 아침공기를 파랗게 갈랐다.러시아 헌병이 달려와 안중근을 붙잡았다.무너지는 이토 가슴에 “대한만세!대한만세!대한만세!” 외치는 쇳소리가 비수처럼 꽂혔다.

11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가 시공을 초월해 대한민국 광화문광장과 중국 하얼빈역에서 부활하고 있다.

-하얼빈역사에서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