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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패배하지 않았다

김병현 도교육청 파견교사

데스크 2019년 05월 27일 월요일
김병현 도교육청 파견교사
김병현 도교육청 파견교사
‘나는 꿈이 없습니다.’연필로 썼다가 망설임 끝에 지운 자국이 선명하다.얼마나 꾹꾹 눌러썼다 지웠는지 음각처럼 내 마음에도 아픔이 새겨졌다.‘꿈 설계대회’라고 이름만 그럴싸하게 바꾼 자기소개서 쓰기 수행평가.꼼짝없이 꿈을 써내야하는 2시간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누가 이 아이의 꿈을 앗아갔을까.이른바 인 서울 하는 학생 비율은 1,2등급을 합한 11% 정도.우리 반 35명중 30여명은 ‘아웃 서울’이다.줄 세우기 입시시스템에서 당연하고도 어쩔 수 없는 결과다.전국의 약 90% 학생들은 인 서울과 상관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데 세상은 너무나 쉽게 이들을 ‘실패’했다고 말한다.그리고 모든 언론과 사회의 관심은 인 서울 소수 대학에만 관심이 있다.

앵커링 효과라는 것이 있다.배가 닻(anchor)을 내리면 닻에 묶인 밧줄 범위 밖으로 벗어날 수 없듯,사람들은 기준점을 중심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백화점 명품숍에 가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상품을 진열한다.사실 이는 판매보다 기준점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이다.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덜 비싼 다른 상품들을 보며 저렴하다고 여기고 이는 구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준점은 어떨까?2018년 직장인 평균연봉은 3500만원 정도(국세통계연보 기준)인데 사회는 억대연봉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평생을 모아도 살 수 없는 건물의 가격에 대해 이야기하고,연예인과 대기업 임원들의 수익을 궁금해 한다.우리사회의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한다.일상적 삶에 비해 너무 높게 설정된 기준점 때문에 우리는 늘 비교당하고 불행을 느낀다.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왜 10%에만 관심을 가지는가?대부분의 입시담론이나 교육정책은 다수의 아이들을 배제한다.놀랍게도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알면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소외된 90%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덜했니? 10% 안에 들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구나’라고 말한다.결국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패배감을 잔뜩 안은 채 사회로 나오고 만다.

정시를 늘리자고 호들갑을 떠는 자칭 전문가들을 보면 씁쓸하다.진심으로 우리 교육의 문제가 수시와 정시의 비중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예전처럼 수능으로만 대학가는 세상을 만들면 아이들이 행복해지고 사회가 나아질까? 아이들은 또다시 목숨을 끊으며 저항할 것이고,어른들은 다시 수시 비중을 늘려야하나 눈치 볼 것이다.본질적인 문제는 대학의 서열화,경쟁의 입시 시스템이라는 걸 모두 알면서도,그래서 교육이 왜곡돼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한다.

우리는 ‘어떻게 뽑을 것인가’에 진을 쏟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기준점을 ‘어른들의 시선’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겠다.10%의 아이들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바라보자.괜찮다고,너는 패배한 것이 아니라고 고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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