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철 시인·춘천기계공고교사

▲ 신준철 시인·춘천기계공고교사
▲ 신준철 시인·춘천기계공고교사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변한다.그중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학교운동회가 아닌가 싶다.운동장을 가로질러 만국기를 걸어놓고 뼈대만 앙상한 농구 골대 위에 큼직하게 청군·백군 혹은 토끼·거북이 팀으로 나눠 점수판을 걸어 놓았던 머-언 옛날 초등학교 시절의 가을운동회가 문득 수채화처럼 떠오른다.

아마 그 시절의 운동회는 학교행사를 벗어나 온동네 마을의 잔치가 아니었나 싶다.돗자리를 준비해와 굳이 아이가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이웃들끼리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도시락에서 김밥,찐밤,옥수수,고구마,과일,밑반찬에 아예 솥단지까지 가져다 아침 일찍부터 운동장 그늘을 찾아 나무밑에서 정답게 먹거리를 먹어가며 서로 담소를 나누었던 모습들을 떠올려보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연스레 미소를 머금게 된다.점심시간 전까지는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며 아이들의 재롱과 운동시합에 박수를 치며 함께 어울리던 동네 어른들이 점심시간부터는 취기가 오르면서 아예 잔치 분위기로 바뀌어 저마다 흥이 넘쳐 난다.

나에게도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아마 4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바로 가족릴레이 경주였다.참가 전부터 두 살 위인 6학년 누나와 나는 서로 자기가 참가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였다.경주는 첫 주자가 학생,둘째 주자는 어머니 마지막 주자로 아버지의 순서였는데 학생과 어머니는 운동장 반 바퀴를 아버지는 한 바퀴를 뛰게 되었었다 6학년인 자기가 뛰어야 된다고 하는 누나와 여자인 누나보다 남자인 내가 뛰어야 한다는 한 치의 양보 없는 다툼에 부모님은 결국 나에게 손을 들어 주었다.물론 누나는 금세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적잖게 부담을 가진 나는 5,6학년 형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뛰었고 결과는 2등으로 어머니에게 배턴 터치를 해드렸다.

관중들의 웃음이 터져 나온 건 바로 그 후였다.어머니는 1등을 쫓아가기보다는 2등만은 빼앗기지 않으려는지 양팔을 벌리고 뒷사람이 추월하지 못하게 뛰셨는데 1등과는 점점 거리도 멀어지고 뒤뚱거리며 뛰시는 폼마저 관중들을 웃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다시 한 번 관중들의 웃음이 터져 나온 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배턴 터치를 해 준 후였다.낮술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아버지는 스타트부터 삐걱하더니 라인을 멀리 벗어나 관중들과 부딪힐 듯한 거리에서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고 성큼성큼 뛰시는 것이었다.모두가 한발씩 물러나며 즐겁게 바라보던 관중들에게 탄성이 나오기 시작 한 건 아버지가 첫 번째 코너를 돌면서부터였다.중학교 시절에 육상 선수였다는 아버지는 가속이 붙자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어 보이던 1등과의 간격을 서서히 줄이더니 결국은 선두로 테이프를 끊으셨다.시상식이 끝나고 가족 모두가 우승상품을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속의 누나 얼굴은 여전히 울음을 머금고 있었다.

오랜만에 펼쳐본 사진을 보며,그때 누나에게 양보하지 못한 것이 이제야 못내 아쉬워져옴과 함께 가을하늘을 향해 높이 세워져 있던 박주머니를 향해 던지던 모래주머니(오재미)놀이가 올 가을에는 지나는 동네의 초등학교마다 가을운동회에서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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