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분홍공장 ‘젠더 트래블’전
29일까지 홍천미술관 개최
홍천 ‘장소성’ 결부 젠더 성찰
통념화된 사고 허구성 꼬집어

▲ 이프 작 ‘반영하다-믿음’,‘반영하다-특권’,‘반영하다-퇴색’,‘반영하다-지원’,‘반영하다-윤이 나는’,‘반영하다-우선순위’ (사진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
▲ 이프 작 ‘반영하다-믿음’,‘반영하다-특권’,‘반영하다-퇴색’,‘반영하다-지원’,‘반영하다-윤이 나는’,‘반영하다-우선순위’ (사진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

지역 도서관의 어느 서가,홍천군청 앞 무궁화에서 ‘젠더’의 규범을 찾고 달리 보는 작업.

홍천 지역문화 공간 ‘분홍공장(대표 용해숙)’이 홍천미술관에서 29일까지 진행하는 ‘젠더 트래블(Gender Travel)’ 전은 지역성과 무관하다고 여기기 쉬운 개념인 ‘젠더’를 지역,지리,장소와 접목해 보자는 발상에서 시작됐다.2019 분홍공장의 창작 프로젝트 ‘지역,젠더를 말하다’의 연계 전시로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저서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에서 따왔다.지역에서 떠나는 젠더 여행.홍천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예술을 잇는 시도다.

특정 지역이나 장소를 젠더 개념과 선뜻 연결짓기 어렵지만,전시는 ‘젠더가 가진 고정관념을 지역을 경유시켜 다른 관점과 상상력이 있는 세계로 이동시키려 한다’는 기획의도를 밝혔다.일상에서 마주치는 이웃의 몸부터 일반 행정구역까지,다양한 ‘장소성’을 결부시키는 방법을 통해 젠더를 성찰하겠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전시는 참여 작가들의 기존 작품들을 그저 지역 미술관과 전시장에 옮겨다 놓는 개념을 벗어났다.전시작 모두 ‘홍천’이라는 지역 내에서 직접 주제에 접근,창작활동을 거쳐 내놓은 신작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당연시 여겼던 기존 질서의 균열을 지역의 지명,주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지역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냈다.

▲ 윤정미 작 연봉도서관.
▲ 윤정미 작 연봉도서관.

전시 참여 작가들은 한국의 고산홍·윤결·윤정미·이지영·이해반·임은정·전수현,독일의 만프레드 알레이트(Manfred Aleithe)와 이프(IF),중국의 흐어즈커 등 10명.윤정미 작가는 홍천의 연봉도서관의 페미니즘 도서가 모두 핑크색인 것에 착안,각 성별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돼 있는 핑크색과 파란색 계열 책들을 모아 사진 찍었다.고산홍 작가는 홍천군청 앞 무궁화에서 나타나는 공공행정의 남성성을 상상,설치물 ‘홍천 무궁화’로 구성했다.중국 출신 흐어즈커 작가는 홍천의 군인과 의사를 직접 만나 그들의 직업,성별이 갖는 특별함을 중심으로 인터뷰 한 후 일반화된 언어를 덧붙였다.우리 생각이 얼마나 통념화되어있고 허구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수현 작가는 홍천강의 옛 이름이 ‘화양강’이었지만 ‘화냥’이라는 말과 비슷해 바뀌었다는 이야기에서 출발,영상작업 ‘내 가슴의 화양강’을 완성시켰다.

윤결 작가는 홍천 옥수수축제와 맥주축제에서 마주친 홍천상인회 사람들의 신체 일부 모습들을 촬영한 사진을 설치로 확장시켰다.독일 출신 만프레드 알레이트 작가는 높이 2.4m 판자 위에 남북 군인이 포옹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 ‘Hug(허그)’로 대립의 이미지를 우정의 관계로 풀어냈고,또 다른 독일 작가인 이프는 군인과 할머니 등 다양한 젠더의 모습이 교차되는 한국 사회에 주목,회화와 사진 등으로 재구성했다.

안대웅 큐레이터는 “분홍공장이 지역과 젠더로 들어갈 수 있는 채널을 열었다면,예술가는 그 길을 따라 지역의 신비로운 풍경에,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나 역사에,시장 사람들에,군대와 지역 행정에 매혹되었다”며 “그런 이끌림조차 부정한다면 젠더와 지역이라는 정체성 아래에 억압된 수많은 것의 몫은 여전히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2014년부터 로컬리티의 재구성이라는 큰 틀로 프로그램을 기획해 온 분홍공장 용해숙 대표는 “젠더를 비롯한 광역개념을 보다 구체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중”이라고 말했다.

김여진 beatl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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