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시차 두고 태어난 작가
인생·문학 멘토와 편지로 소통
50여편 시·수필에 해설 더해
허균 꿈꾸던 세상 책에 담아


‘꿈을 꾸었다.웬 사내가 꿈 속에 나타나더니 몸뚱이는 없고,머리만 있는 얼굴로 씨익 웃었다.그였다 허균.’

400년 전,이상세계를 꿈꾸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강릉 출신 비운의 문장가 허균(許筠·1569~1618)에게 보내는 ‘편지’가 한권의 시집으로 나왔다.

강릉 출신 박용재 (사진)시인이 발간한 ‘애일당 편지(138쪽·1만원·애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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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에는 허균의 오십 인생을 아로새기듯 50여편의 시(詩)와 수필 형식의 편지글,학계 전문가의 해설·발문이 더해졌다.허균의 시를 차운하면서 묻고 답하는 형식이기에 허균의 삶과 생각,애향의 정이 시집 전편에 역사의 들불처럼 타오르면서 오늘을 사는 세인들에게 큰 울림을 전한다.형장에서 “할 말이 있다”고 소리쳤으나 끝내 묵살당했던 허균의 마지막 사자후를 문학의 형식을 빌어 시인이 대신했다고나 할까.

시집의 부제는 ‘400년 전 옆집 시인 허균에게 묻고 답하다’이다.‘옆집 시인’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박용재 시인이 허균과 고향 터를 함께하기에 가능한 일이다.시인은 허균이 태어난 애일당이 있는 강릉시 사천면 하평리 교산(蛟山) 태생이다.400년 시차를 두고 같은 터에서 세상에 나온 시인이 인생의 멘토,문학의 멘토인 허균의 생애를 보듬으면서 오늘의 세상과 소통하는 편지글을 내놓은 것이다.

시인은 그 옛날 옆집 아저씨 허균을 만나 문답하고,고향땅에서 함께 노닐고,비운의 생을 어루만지면서 끝내는 시로 진혼의 잔을 올린다.

▲ 교산 허균 국가표준 영정
▲ 교산 허균 국가표준 영정
‘죽을 때 억울하다 말 한마디/시원하게 못한 슬픈 인생아(중략)/이제 태를 묻은 교산으로 돌아와/더 이상 눈물을 참지 말고/그대 자신을 위해 울어라/다시는 누구의 인생을 위해 울지 마라(중략)/조금이라도 남은 눈물이 있다면/대나무 바람 부는 교산에 올라 누워/그대 자신의 생을 위해 흘려라.’

허균이 답을 보낼리 만무하지만,시인은 다시 청한다.“이승에서 비록 그대(허균)를 못 만났으나 저승에서 혹 인사드릴 인연이 되거든 만권의 책이 있는 ‘호서장서각’을 다시 경호가에 세웁시다.이 못난 서생도 그대 책의 좀벌레로 들어갈테니 좀생이 같은 내 작은 생각에 큰 깨달음이라도 하나 던져주시오”라고.

시인은 “허균을 조선,봉건사회,혁명가에서 해방시켜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따라서 시집은 오십 평생 1400편을 남긴 허균의 시를 통해 그의 내면의식을 좇고 보듬는데 주력했다.그러나 시집은 또 한편 필연적으로 허균이 꿈꾼 세상을 발현하는 결정체이면서 웅변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선다.

박 시인은 관동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지난 1984년 ‘심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극작자,연극평론가,예술감독 등으로 활동 지평을 넓혀왔고,현재 가톨릭관동대에서 강의와 지역문화콘텐츠 개발작업을 하면서 고향의 문화진흥에 힘쓰고 있다.‘조그만 꿈꾸기’,‘따뜻한 길 위의 편지’,‘불안하다 서 있는 것들’ 등 다수의 시집을 냈다.


최동열 dycho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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