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이사람] 아바이마을 실향민의 한 ‘돈돌라리’
속초 정착 실향민
함경도 민요 돈돌라리 명맥
고향 갈 수 있으리란 희망 담겨
실향민 3세대 가사·음 체록
현대식 복원 공연

▲ 돈돌라리 공연 모습.
▲ 돈돌라리 공연 모습.

실향민의 고장 속초에는 우리나라의 가슴아픈 역사를 담은 소리를 발굴하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르신들이 있다.돈돌라리 공연단이 그 주인공으로 이들은 어린 시절 흥얼거리던 노래를 매개로 소통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향 방문에 대한 기다림과 세월을 노래와 춤으로 승화한 돈돌라리 공연단을 소개한다.

돈돌라리 공연단은 현재 40여 명이 활동중이다.이 중 10여명은 실향민 1세대들이다.이들은 고향 문화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역행사 공연,찾아가는 문화나눔봉사 활동 등을 펼치며 고향의 구전 민요인 ‘돈돌라리’를 알리고 있다.‘돈돌라리’는 실향민의 한이 담긴 노래다.

“고향 떠나온지 70년이 다 지나여도 간다는 소식이 무소식이요/아득한 고향 정든고향 내고향 그곳으로 가고싶소/간다는 7일은 70년이 흘려 저하늘에 흰구름만 쌓여가구나/한맺힌 이마음을 그 어찌 누가 알겠소/내고향 아득하니 간절하구나니~나아~니~나니나~니~나니나~니나~나~나요~~”(돈돌라리 내고향 가사 중)

▲ 돈돌라리 공연 모습.
▲ 돈돌라리 공연 모습.

속초 아바이마을은 실향민 집단 정착촌이다.한국전쟁 당시 총칼을 피해 남으로 향한 함경도 출신 피난민들이 전쟁 후 한발이라도 앞서 고향과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북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둥지를 튼 곳이 바로 아바이마을이다.그러나 날카롭고 차가운 철책이 이들의 귀향길을 가로막았고 이 후 70여년이 흘렀다.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함경도 출신의 피난민들은 오랜기간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유년시절 고향의 아주머니들이 부르던 노래를 억지로라도 흥얼거렸다.그 노래가 바로 ‘돈돌라리’다.

돈돌라리의 기원은 개화기로 거슬러 오른다.함경남도 부녀자들이 바닷가나 강변,산에 모여 춤을 추고 놀면서 부르던 노래다.‘돈돌’은 돌고 돈다,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로 조국도 해방돼 원래상태로 돌아온단 뜻을 내포한 것으로 해석된다.일부에서는 동쪽에서 해가 떠오는 희망의 날을 의미하는 ‘동틀날’을 일본인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발음을 흐려 ‘돈돌라리’라고 불렀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 역시 해방을 기원하는 노래라는 뜻이다.그런 돈돌라리가 속초에 정착한 실향민들에게는 돌고 돌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듯 고향에 언젠가 갈 수 있으리란 희망을 담은 민요로 불려온 것이다.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돈돌라리가 현재의 구색을 갖추게 된 것은 10여년 전쯤이다.

▲ 돈돌라리 공연 모습.
▲ 돈돌라리 공연 모습.

속초출신으로 실향민 3세대인 신천무용단의 김민희 단장이 2008년 지역 실향민 1세대들에게 돈돌라리의 가사와 음을 체록하기 시작했고 실향민들을 참가시킨 공연단을 구성,현대식 공연으로 재탄생 시켰다.

김 단장은 “실향민 1세대가 점차 세상을 뜨면서 소리의 명맥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 아쉬웠다.실향민의 도시 속초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 콘텐츠이자 전통문화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가 묻고물어 돈돌라리 복원을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이어 “실향민 1세대 단원들은 80~90대 어르신들이라 어제 하셨던 노래와 춤도,방금 하셨던 공연 순서도 기억을 못하시기도 하지만 돈돌라리를 부르고 춤을 추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즐겁게 사시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고 웃었다.

복원 과정이 원할했던 것은 아니다.특히 실향민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자료 수립이 가장 힘들었다.현재 아바이마을에 남아 있는 실향민 1세대는 대략 100명이다.이 가운데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석에 있는 어르신을 제외하면 대외활동을 할수 있는 어르신은 50여 명에 불과하다.김 단장은 “처음 돈돌라리를 접했을 당시에는 가사가 많이 변형돼 있었다.충분한 복원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부르는 사람과 지역에 따라 많이 달랐다.이를 바로 잡으려고 했지만 어르신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힘들었었다”고 토로했다.

▲ 돈돌라리 공연 모습.
▲ 돈돌라리 공연 모습.

최근 공연단에는 젊은 바람이 불고 있다.하루하루 다르게 기력이 떨어지는 어르신을 대신해 지역의 문화를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젊은이들이 공연단에 참여하고 있다.공연 기회도 많아졌다.초창기에는 지역에서만 열리는 작은 행사에나 공연할 기회를 얻었지만 최근에는 타 시·군에도 초청돼 공연을 할 정도로 연간 30회 정도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특히 지난달 말 원주 백운아트홀에서 열린 강원도립무용단과의 합동 공연에서는 70년 세월 고향에 가지 못한 슬픔을 담담한 목소리에 녹아내며 많은 관객들의 눈물을 훔쳤다.

실향민 1세대로 돈돌라리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김숙자(92·여)씨는 “돈돌라리의 매력이 많지만 그중에서 가사는 애절하지만 음율이 단순하고 반복돼 따라부르기 쉽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개인적으로는 노래와 춤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아름다운 고향기억에 젖어든다.이렇게 진한 향수에 관객은 물론이고 우리 공연자들이 함께 눈물 훔치는 일이 많다.최근에는 돈돌라리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발걸음이 많아졌다.단순 반복되는 음율이 최근 대중가요와 비슷해 젊은 친구들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이들의 열정으로 돈돌라리가 계속 전승된다면 바랄 것이 없고 함께 소통하며 오랫동안 공연한다면 내 황혼기가 남부럽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박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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