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군 시각장애인 연합회 회원
상설 소극장 ‘연극바보들’ 방문
연극 ‘뷰티풀 라이프’ 소리로 감상
후천적 장애 스토리 공감대 형성

▲ 홍천시각장애인연합회 회원 등 30여명은 최근 춘천 상설소극장 연극바보들에서 ‘뷰티풀 라이프’를 관람했다.
▲ 홍천시각장애인연합회 회원 등 30여명은 최근 춘천 상설소극장 연극바보들에서 ‘뷰티풀 라이프’를 관람했다.

강원도 최초로 문을 연 상설소극장 ‘연극바보들’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았다.평소에는 공연이 진행되지 않는 한산한 평일 낮 오후.객석은 홍천군 시각장애인연합회 회원과 가족 30여명이 채웠다.이곳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뷰티풀 라이프’를 보기 위한 특별 손님들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 연극이 아닌 일반 작품인만큼 감상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잠시 뿐,극이 진행될수록 객석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들이 터져나왔다.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은 다반사이지만 이날은 조금 더 특별했다.오로지 청각에만 의지하는 이들이 이토록 오롯이 공연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연극이 시각장애인을 주제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이들은 배우들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감정의 변화부터 무대를 걸어다니는 발자국 소리까지 온 감각을 집중하며 연극을 감상했다.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얻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은 시각장애 진단을 받고 점차 빛을 잃어가는 과정들이 실감나게 그려져 시각장애를 가진 이날 관객들의 공감을 샀다.처음 연극을 접하는 회원도 있고,장애인들을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영화나 연극을 본 경험이 있는 회원들도 있었지만 감상의 무게는 같았다.

객석의 민봉아(홍천·75) 어르신은 누구보다 공연에 몰입했다.어린시절 문학소녀로 소설을 가장 좋아했던 민 어르신은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 이미지를 그려냈던 것처럼 연극의 소리를 들으면서 온 감각을 되살렸다.하지만 머릿속에 이미지를 일부러 그릴 필요는 없었다.극이 전개될수록 그녀의 지난 인생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연극은 그녀의 일생과 꼭 닮아있었다.민 어르신은 시부모님을 모시다 시각을 잃었다.어른 앞에서 지팡이를 짚으면 버르장머리가 없어 보일 것이란 생각에 오로지 감각에만 의지하며 시아버지와 남편을 봉양했다.민 어르신은 연극의 줄거리와 마찬가지로 눈이 멀고난 후 오히려 남편과 더 각별해졌다고 했다.지팡이가 없어 남편의 손을 꼭 붙잡아야만 밖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민 어르신은 “십수년 전 남편의 심장이 좋지 않아져 수술을 했지만 아내가 걱정할까봐 몰래 약을 먹은 것도 연극과 똑같다.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고 거듭 이야기했다.그는 “귀로만 들어도 이렇게 좋은데 실제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부부가 의지하고 사는 모습에 공감하며 감명깊게 봤다”라고 밝혔다.

이번 시각장애인 문화체험 프로그램 ‘행복한 소리문화체험’을 기획한 김민경 홍천군시각장애인연합회 사회복지사는 “지금까지는 회원 분들의 연극 관람을 진행하려면 서울에 가야만 했는데 가까운 춘천에 극장이 생겼다고 해서 오게 됐다”며 “시각 장애인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됐다.회원 분들이 본인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공감하고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해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달 춘천 강원대 후문 골목에 자리잡은 상설소극장 ‘연극바보들’은 이같은 특별공연을 포함한 단체관람 문의가 쇄도하는데다 일반 관람객들의 발길도 이어지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지난달 초 개관하며 선보인 연극 ‘그날이 올텐데’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대학로 예매평점 1위의 연극 ‘뷰티풀 라이프’를 지난 달 20일부터 공연중이다.첫 작품 ‘그날이 올텐데’의 경우 춘천연극제와의 협업을 통해 선보였던 것과 달리 이번 작품은 연극바보들을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 무하의 장혁우 이사장이 수개월간 노력한 끝에 무대에 올리게 됐다.

‘뷰티풀라이프’는 낭만적인 연애와 결혼의 시기를 지나 희로애락의 삶을 거친 한 부부의 이야기다.혼자 남겨질 아내를 위해 작은 준비를 하는 남편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삶의 가치를 깨우치게 되는 작품이다.평단과 관객들로부터 ‘명품 연극’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학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작품인 만큼 춘천에서도 연일 입소문을 타고 극장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장혁우 이사장은 “기존의 지역 모임에 연극 관람을 더해 찾아오는 관객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장벽없이 누구나 소극장 문화를 즐기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연극 ‘뷰티풀 라이프’는 오는 12월 15일까지 관객들과 만난다. 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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