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미탁 동해안 강]
잠못든 삼척·강릉 악몽같던 밤
밤 11시부터 빗물 차오른 삼척
30~40여분만에 어깨높이까지
밀려든 토사 세간 살림 황폐화
강릉 경포인근 거대한 물바다로
상가·주택·농경지·도로 피해속출
차에 갇힌 운전자 구조요청 쇄도

태풍 ‘미탁’이 통과하면서 500㎜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폭우를 퍼부은 2∼3일 밤 동해안 주민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토사가 집을 덮치고,애써 가꾼 황금들녘은 흔적도 없이 물바다가 됐다.저지대 도로에서는 갑자기 불어난 물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게 된 운전자들이 차를 버리고 몸만 탈출했다.주민들은 “지난 2002년 태풍 ‘루사’ 악몽이 재현된 밤” 이라고 탄식했다.



▲ 삼척시 원덕읍 호산2리 마을 주민들이 지난 2일 밤 시간당 120㎜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자 고령의 어르신을 업어서 대피시키고 있다.
▲ 삼척시 원덕읍 호산2리 마을 주민들이 지난 2일 밤 시간당 120㎜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자 고령의 어르신을 업어서 대피시키고 있다.

■ 전쟁터로 변한 삼척 원덕읍 호산2리

“갑자기 물폭탄이 집안으로 밀려드는 바람에 간신히 몸만 빠져 나왔네요.막막합니다.”

삼척시 원덕읍 호산2리 주민 김호덕 씨는 “전쟁 같은 밤을 지새고 나니 남은 것은 진흙 뻘 뿐” 이라고 한숨을 토했다.김 씨는 “산에서 내려온 진흙이 마을은 물론,집 안까지 밀려들어 냉장고 등 온갖 가재도구를 모두 집어삼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동해안 최남단에 위치한 호산2리 주민들은 지난 2일 밤 11시부터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마을로 밀려든 빗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고 있다고 느끼던 찰나 30∼40여분 만에 빗물은 어른 어깨 높이까지 차 올랐고,마을 내 48가구를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김상명(48) 이장을 비롯한 마을 청년들은 연로한 어르신들부터 찾아 나섰다.칠흑 같은 어둠속 장대비를 뚫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마을회관으로 대피시키고,위기 상황에서 연락이 닿지 않는 어르신들을 찾기 위해 청년 2명씩 짝을 지어 물길을 헤쳤다.

김 이장은 “속수무책 이었지만,인명피해 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청년들과 함께 주민 대피에 온 힘을 쏟았다”며 “지난 2002년부터 연거푸 닥친 태풍 ‘루사’와 ‘매미’ 때도 별 탈 없이 지나갔던 마을이 이번에는 이렇게 큰 피해를 입은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호산2리 주민들은 물이 빠지기 시작한 이튿날 동이 트자마자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지만,수십년 보금자리가 처참하게 일그러진 피해 상황에 너나없이 망연자실,할 말을 잊었다.



▲ 지난 2일 밤 제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강릉시에 3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강릉시 포남동 인근 상가 건물이 침수됐다.
▲ 지난 2일 밤 제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강릉시에 3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강릉시 포남동 인근 상가 건물이 침수됐다.

■ 만신창이 강릉-곳곳이 잠기고 찢겨

“밤새 한숨도 못자고 밖을 내다보다가 5시쯤 순식간에 마당에 물이 차고,집 안으로 넘치려고 해 그대로 뛰쳐나왔습니다.”

강릉시 신영초교에 대피한 주문진읍 손호자(72·여)씨는 지난 밤 마치 악몽을 꾼 것 같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강릉은 태풍 ‘미탁’이 통과하면서 뿌린 물폭탄으로 만신창이가 되고,밤새 주민 대피 행렬이 이어졌다.경포호가 넘쳐 거대한 물바다가 되면서 경포해변 입구에 자리잡은 진안상가를 비롯 주변 상가들이 대규모 침수피해를 입었고,시내 상가와 주택,농경지,도로 등의 피해가 속출했다.특히 경포 진안상가는 동해안 최대 해안관광지에 자리잡고 있는데도,집중호우 때마다 물난리 피해가 반복되고 있어 상인들의 고통이 임계점에 다다른 상황이다.

강동면 군선천과 사천면 사천천 등이 범람 위기에 처하면서 주민들이 마을회관으로 급히 대피했고,재난 대비 안내 문자가 시시각각 시민들에게 전파됐다.남대천 하류 쪽 시내버스 차고지와 시내 도로 곳곳이 물에 잠기면서 3일 오전 6시 첫차부터 오전 11시까지 시내버스 운행도 전면 중단됐다.

옥계면에서는 고속도로와 동해선 철도 밑을 통과하는 지방도 저지대가 물에 잠겨 차량 운전자들이 차를 버리고 몸만 대피하는 긴박한 상황도 잇따라 연출됐다.3일 아침 날이 밝자 옥계면과 강남동,경포저류지 등지에서는 물이 잠기거나 진흙 투성이가 된 차량들이 곳곳에서 목격됐다.119에도 “차에 갇혔는데 물살이 거세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구조 요청 전화가 쇄도했다.주문진읍 권영희(63·여)씨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대피하라는 반장 목소리를 듣고 옷과 약만 챙겨 빠져나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동열·구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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