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큰일을 당하면 발 벗고 나서는 것이 우리민족의 아름다운 전통이다.남의 불행을 몰라라하지 못하는 특별한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가깝게는 친지와 이웃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달려가지만,여기서 머물지 않는다.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곤경에 처한 소식을 들어도 가만있지 못하는 것이다.이런 마음이 일어나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얼마쯤 인간이 지닌 보편적 정서이기도 하다.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독 이런 정서가 두드러진다는 소리를 듣는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마을 자치규약에는 아예 이런 전통을 명문화해 두고 있다.향약(鄕約)의 덕목으로 좋은 일을 서로 권하고(德業相勸),잘못은 서로 규제하며(過失相規),예의로써 서로 교류하고(禮俗相交),어려운 일을 당하면 서로 돕는 것(患難相恤) 네 가지를 꼽고 있다.공동체를 안정적으로 유지존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약을 이렇게 정리해 놓았던 것이다.좋은 일은 장려하고 나쁜 일을 억제하며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기풍을 진작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덕목이 강제한다고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가까운 이웃이나 나라 안에서 일어난 일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라밖에서 발생한 여러 재난에도 구조와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이역만리의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같은 아픔과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데 대한 본능적 방어기제로 볼 수 있겠다.

오지랖 소릴 들어가며 꼭 나서야 하는가.이런 고민은 오래 전에도 있었다.중국 진(晉)나라에 기근이 들어 진(秦)나라에 식량지원을 요청했는데 의견이 분분했다.이 때 백리해(百里奚)가 원조의 논리를 이 같이 편다.“천재는 번갈아 오는 법이므로 이웃의 재앙을 돕는 것이 정도(正道)다.정도를 가야 복을 받는다(天災流行 國家代有 救災恤隣 道也 行道有福)”당장 내일 일을 모르는 게 인간사다.재난도 돌고 돈다는 생각을 하면 겸허해지고 흔쾌히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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