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창성 서울본부장

▲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10월25일 오후5시 청와대 녹지원.

가을 저녁 은은한 갈색 조명을 받아 빛나는 상춘재를 병풍 삼아 문재인 대통령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맞은 편에는 국내외 출입기자 250여 명이 타원을 그리며 배치된 테이블에 둘러 앉아 대통령을 주목했다.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청와대가 북악산 기슭 녹지원에서 마련한 출입기자단 초청 간담회는 모처럼 덕담과 웃음이 오가며 무르익어 갔다.

같은 시각 광화문광장.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본부’가 개최한 ‘철야 국민대회’가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되고 있었다.참가 국민들은 북쪽 광화문 앞부터 남쪽 동화면세점까지 700여m 도로와 광장을 가득 메웠다.시위대는 ‘공수처법 폐지’와 ‘문재인 하야’ 등이 적힌 손 피켓을 들고 “태극기로 뭉치자”,“헌법으로 싸우자”,“진실로 이기자”라고 외쳤다.광장의 “정권 퇴진” 함성이 대형 스피커를 타고 경복궁을 넘어 청와대 방향으로 울려 퍼졌다.

같은 시각 청와대 녹지원.

문 대통령은 환영사를 마친뒤 테이블을 하나하나 돌면서 기자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이어갔다.부산 영도가 고향이라는 기자와는 친구를 만난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악수하고 사인을 해 줬다.분위기가 달아 오르자 문 대통령은 기자들이 따라준 맥주 잔을 단숨에 비우기도 했다.웃음과 술잔이 오가는 중간 중간 광화문 광장에서 들여오던 국민들의 함성은 어느새 청와대 곁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문 대통령은 1시간 20여 분 동안 진행된 기자 간담회를 마치며 마이크 앞에 섰다.“요즘 여러모로 어렵습니다만 저만큼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정치인이 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전적으로 기자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안들림) ~.” 광화문 광장에서 전해지는 외침이 문 대통령의 인사말과 뒤엉켜 잘 들리지 않았다.발언은 그래도 계속됐다.“저의 모습을 잘 전해주셨기 때문에,국민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 사랑을 받을 수….” 다시 시민들의 함성이 대통령의 목소리를 끊어 먹었다.다시 마무리 인사말은 이어졌다.“저는 꽤 술도 마셨고요.소통수석 보시기에 이렇게 많이 마신 거 처음 보셨을 텐데 이제 물러나겠습니다.” 잠시 후 문 대통령은 기자단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집무실이 있는 여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6시30분 춘추관.

토끼 꼬리처럼 짧아진 가을 햇볕이 사라진 청와대는 곧 어둠에 파 묻혔다.저 멀리 광화문광장은 도심 조명에 대낮 같이 밝았다.경복궁을 넘어온 광장의 함성이 다시 정적을 깨며 어둠을 흔들었다.2008년 광우병 촛불,2016년 국정농단 촛불을 기억하는 북악산은 2019년 광화문 광장의 외침을 지켜보며 또 한번 불면의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춘추관으로 되돌아 오는 길,얼굴을 때리며 스쳐가는 찬 바람에 기자의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