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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 좋은 말, 나쁜 말, 이상한 말

말말은 바람과 소원, 간절함을 담는 ‘ 주문’ < 呪 文 >
팩트체크, 조작 정보 정당화
거짓말 역할 대체로 ‘ 나쁜 말 ’
신화 속 인간욕망 언어를 분열
프로이트 “ 언어와 주술 하나”

김여진 beatle@kado.net 2020년 01월 04일 토요일 13 면


한동안 뉴스를 보거나 읽지 못했다. 좀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TV,인터넷,뉴스에서는 폭력의 말들이 난무하고, 관련된 사람들은 삿대질을 하며 거짓말을 한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이제 더 이상 댓글을 달 수 없는 연예관련 기사는 광고성 기사와 근거 없는 추측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어 가고 있다. 한때 인기 있었던 ‘팩트체크’는 오히려 조작된 정보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소위 ‘빼박’이라는 사진과 영상이 증거로 제시어도 조작을 주장하면 그만이다. 조작이라는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그 사이에 또 다른 거짓말이 나오고 검은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쓰고 음성변조를 한 증인들이 소환되어 아수라장을 아예 전쟁터로 만들어버린다.

누군가의 입 밖으로 던져진 언어는 누군가의 귀에 닿기도 전에, 그것이 활자화되기도 전에 오염된다. 말 없는 세상에 살 수 없는데,나도 말을 하고 글을 쓰며 사는데,이 복잡함과 답답함을 설명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궁금증이 생겼다. ‘말’(言)의 역사는 얼마나 됐을까,하는. 최초의 ‘말’이 오늘날의 언어로 분화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다. 생존을 위해 사용되었을 말은 구체적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단계로 올라서고,좀 더 시간이 지나면서 철학적 사고나 미적 담론을 논하는 고급 유희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사고가 복잡해지고 정교해진 것은 언어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어의 분화에 대한 오래된 신화가 있다. 하늘 끝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으려는 인간의 욕망에 겁을 낸 신들이 하나의 언어를 분열시켜 다양한 언어를 만들었다는 바벨탑 신화가 그것이다. 세상의 언어가 분화되지 않았더라면, 하나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면 사람들은 과연 바벨탑을 완성해서 하늘 끝까지 닿을 수 있었을까? 신들의 염려는 기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어가 하나였다고 해도, 사람들의 욕망은 서로 달라서 같은 언어의 내부에는 균열이 생기고 탑은 결국 미완성의 상태로 남겨졌을 거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정말 궁금한 건 거짓말의 기원이다. 말과 규칙을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흔히 듣는 말 가운데 하나는 “거짓말 하면 안 돼”라는 금기어다. 거짓말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다.

그게 어른들 눈에는 빤히 보이는데, 아이들은 거짓말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또 생각해본다. 거짓말을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나 운명과 직결된 것은 아닌가,하는.

아무튼 누구나(거의, 예외는 없을 것 같다) 거짓말을 하고 산다.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가진 노래만도 수십 곡에 이르고(그것도 국내에서만),거짓말은 영화의 단골 소재다. 얼마 전에 개봉한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2019)에서는 거짓말만 하면 구토를 하는 특이한 증후군을 가진 마리타가 나오고, 오래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1997)에서는 아들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아버지의 절절한 사랑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라이어,라이어>(Liar Liar, 1997)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한 변호사가 ‘하루만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아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고 있다. 거짓말의 역할은 다양해서, 누구의 입에서 어떻게 나올지,그것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대부분은 사람들은 거짓말의 대상이 내가 아니기만을 바랄 것이다. 거짓말은 대체로 ‘나쁜 말’이어서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니까.

세상에는 ‘이상한 말’도 있다. 사실, 언어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상한 말들이 더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그 언어로 동물과 대화하고,자신의 소원을 끊임없이 말했다. 거기에 형식이 덧입혀지고, 시간의 축적,간절함이 더해지면서 언어는 마법,그 자체가 되었다.

모든 주문,마술의 중심에는 언어가 있었다. 고대의 주문과 마법을 연구했던 프랜시스 배릿은 인간의 말은 너무 강력해서 세상의 모든 마법은 언어 없이는 무력하다고 했고,프로이트도 언어와 주술은 원래 하나였다고 말했다. 원래 ‘말’은 그냥 아무렇게나 내뱉는 것이 아니라,바람과 소원과 간절함을 담은 일종의 주문(呪文)이었던 것이다.인류의 먼 조상들이 가졌던 습관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사람들은 새해나 생일,또는 특별한 날이 되면 습관적으로 좋은 말을 건넨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부자 되세요”,“행복하세요.” 등등. 상투적으로 그냥 하는 말일 수 있지만,언어의 본래 속성을 생각해보면 그 말들은 효력이 발생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새해에도 좋은 말,나쁜 말,이상한 말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유통될 것이다. 말이 만들어지는 건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고,거짓말이 생겨나는 것도 어찌할 수가 없지만,‘말의 힘’을 빌어 가만히 바란다. 새해에는,사람들 사이에 넘실거리게 될 수많은 말들이 아수라장이 아니라 향연이 되기를, 뾰족한 말보다는 위안의 말이 조금 더 많기를,그래서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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