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텔링]대박난 중국집의 비법
춘천 약사명동 백년가게 보문각
가업승계 후 매장 인테리어 혁신
젊은 여성·가족 단위 취향 저격
창업자 손맛 정량레시피로 구축
50년 전통과 역사 스토리텔링화
가족구성원 참여 책임경영 실현

[강원도민일보 권소담 기자]영어단어 fortune에는 ‘운’,그리고 ‘부’라는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돈이 곧 그 사람의 운으로 치환되는 자본의 시대를 설명하는 말로 이보다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요.강원도민일보는 매주 금요일 ‘포춘 텔링’ 면을 신설합니다.의역하자면 ‘돈되는 이야기’입니다.우리 곁의 다양한 부와 돈,그리고 사람에 대해 소개합니다.위코노미(We+Economy) 정신을 기반으로 우리 모두가 경제의 주인공이 되는 지면을 지향합니다.전통적 자본주의 체제에 가려져 있던 지역경제의 사회적 가치를 발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강원도의 포춘을 그립니다.첫 순서로는 2대째 이어지는 반백년의 전통과 현대 소비 트렌드를 접목해 대박을 친 춘천 보문각의 성공신화를 통해 벼랑끝 강원 외식산업의 해법을 제시합니다.

▲ 춘천 보문각 김선미 대표는 지난 2018년 7월 구도심의 단독주택을 개조해 현대적이고 세련된 건물을 지어 가게를 이전했다.사진은 보문각 전경.
▲ 춘천 보문각 김선미 대표는 지난 2018년 7월 구도심의 단독주택을 개조해 현대적이고 세련된 건물을 지어 가게를 이전했다.사진은 보문각 전경.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춘천 죽림동 성당에서 언덕길을 조금만 내려가면 언뜻 카페로 보이는 모던한 건물 한 채가 나타난다.1970년 춘천에서 중화요리집으로 개업해 이제는 중화식 비빔국수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춘천 보문각(대표 김선미)이다.보문각은 전통과 경쟁력,성장가능성을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로 지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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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식 비빔국수는 보문각을 찾는 손님의 80%가 주문할 정도로 음식점의 대표 메뉴다.
창업주인 전춘길(76),손명숙(70)씨 부부는 춘천에서 대흥루,태화각 등의 이름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수십년을 주방에 섰다.지금은 재건축 아파트가 건설중인 춘천 약사명동의 구도심에 ‘보문각’이란 이름으로 자리잡은 후 2000년대 초반부터 중화식 비빔국수가 지역사회에서 입소문을 탔다.전국적으로 명성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7년 SBS ‘생활의 달인’ 방송에 소개되고 나서부터다.방송 이후 테이블 다섯개의 허름한 가게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손님을,노부부가 감당하기에는 벅찼다.힘에 부친 창업주 부부가 은퇴를 고민하자 며느리 김선미(48)씨가 발 벗고 나섰다.낙지 전문점을 경영했던 경험을 살려 시부모에게 비빔국수 비법을 배웠다.

김선미 대표가 가업을 승계한 후,2018년 7월 구도심의 단독 주택을 개조해 현대적이고 세련된 건물을 지어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김 대표가 추구하는 보문각은 ‘젊은 감각의 편안한 외식공간’이다.비빔국수가 생각나는 더운 여름철,보문각은 평균 4000만원의 월 매출을 올린다.점심시간에는 70개,저녁에는 60개의 테이블이 회전한다.6000원짜리 국수를 주력 메뉴로 이만큼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보문각을 찾도록 고심한 김 대표의 혁신적인 경영전략 덕분이다.

▲ 과거 춘천 약사명동 재개발 구역이 있었던 보문각은 맛있지만 허름한 가게였다.
▲ 과거 춘천 약사명동 재개발 구역이 있었던 보문각은 맛있지만 허름한 가게였다.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음식점 수가 급격히 늘면서 국내 외식산업은 2017년 기준 128조원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으나 수익성은 감소 추세다.2017년 외식업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1068만원 감소하면서 3년 연속 감소세로 나타났다.생계형 영세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음식점업은 과당경쟁 등의 구조적 문제,체감경기 악화 및 민간소비 침체에 따른 외식 소비심리 악화,낮은 노동생산성 등으로 수익성 저하 문제를 겪고 있다.2008년 외식업체의 영업이익률은 22.9%였으나 2017년엔 8.7%로 14.2%p 하락했다.

인구 1000명 당 국내 음식점은 13.5개로 일본(5.6개),독일(3.2개),미국(2.1개) 보다 월등히 많다.경기침체와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 등으로 외식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외식시장이 과포화 상태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무한 경쟁 외식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음식점과는 차별화된 특징과 메뉴가 있어야 한다.보문각은 전통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 능력과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인테리어,확실한 주력메뉴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상을 남겼다.중화식 비빔국수 하나로 월 4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보문각의 성공 비결을 물었다.

▲ 젊은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공간을 꾸민 후 고객층의 발걸음이 크게 늘어났다.
▲ 젊은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공간을 꾸민 후 고객층의 발걸음이 크게 늘어났다.


■ 고객을 생각한 편의시설

2세대인 김선미 대표가 가업을 물려받으며 가장 중시했던 부분은 소비자들의 니즈(요구)를 파악하고 가게 운영에 반영하는 ‘소통’이었다.현 위치로 이전하기 전 약사명동의 재개발 구역에 위치했던 보문각은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어 특히 여성 고객들이 꺼려했다.‘맛있지만 허름한 가게’로는 새로운 손님을 끌어들이기 힘들다고 판단,새로운 공간과 편의시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건물의 천장을 높게 지어 쾌적한 공간을 만들고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를 마련했다.중국음식점에서 흔히 보이는 ‘福’ 걸개나 홍등,중화요리 현판은 찾을 수 없다.창업주의 정신과 맛은 지키면서 젊은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공간을 꾸렸다.특히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고 위생용품을 구비,청결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공간의 혁신은 고객층 변화를 가져왔다.과거에는 혼자 가게를 찾아 빨리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중년 남성의 단골 손님이 90% 이상을 차지했다면,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한 후에는 여성 손님과 단체 손님이 크게 늘었다.구매력이 있는 여성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입소문을 내면서 새로운 보문각은 가족 외식 장소로 각광받기 시작했다.현재 주말 손님의 70%는 가족 단위 손님이다.

■ 대표 메뉴는 식당의 얼굴

보문각의 대표 메뉴는 ‘중화식 비빔국수’다.짜장면,짬뽕,짜장밥,짬뽕밥,탕수육 등의 메뉴도 있지만 보문각을 찾는 손님의 80%가 비빔국수를 주문한다.김 대표는 지역의 소비자들이 ‘보문각=중화식 비빔국수’라는 공식을 떠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김선미 대표는 “소비자들이 ‘이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이 식당에 가야한다’고 직관적으로 연상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주력메뉴를 명확히 설정해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 정량 레시피로 한결같은 맛

창업주 세대가 이끌던 보문각의 비빔국수 맛은 ‘달인’으로 인정받은 손명숙(김선미 대표의 시어머니)씨의 손에서 나왔다.구체적인 레시피 없이 손씨가 수십년간 경험으로 익힌 방법으로 음식을 조리했다.그러나 가게의 규모가 커지고 손님들이 밀려들자 이 방식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손씨의 비법을 정량 레시피로 구축,그가 은퇴한 후에도 한결같은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그럼에도 손씨는 매일 아침 이제는 며느리가 운영하는 가게로 나와 소스를 맛보고 확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 전통과 현대를 잇는 스토리텔링

새롭게 단장한 보문각에는 과거 보문각의 흑백 사진이 전시돼있다.50년을 이어온 보문각의 전통을 계승하고,백년가게로의 정체성을 고객들과 나누기 위해서다.보문각이 젊은 SNS 사용자를 중심으로 ‘핫플레이스’로 떠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다.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오래된 ‘샘표 진간장’ 간장병은 중년 소비자들의 향수를 불러오는 트리거로 보문각의 역사를 보여준다.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보문각 관련 리뷰가 200건 이상,사진 기반 SNS 인스타그램에는 ‘#보문각’ 해시태그가 1000건이 넘는다.김선미 대표는 “젊은 소비자들은 단순히 ‘무엇을 먹었다’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며 “소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이상을 향유하길 원하는 젊은이들의 감성에 보문각의 전통과 역사가 공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 춘천 보문각은 전통과 성장가능성을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로 지난해 지정됐다
▲ 춘천 보문각은 전통과 성장가능성을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로 지난해 지정됐다

■ 가족 경영의 끈끈함

보문각은 가족이 경영하는 음식점이다.김선미 대표가 경영,김 대표의 남동생이 주방장,딸이 주방보조,시누이가 홀 서빙을 맡았다.모두가 ‘나의 일’이라는 책임감으로 가게를 지키면서 김 대표의 뒤에는 든든한 응원군이 여럿이다.성과에 대해서는 확실히 보상하고 때로는 엄정한 대표가 되는 김 대표의 등용술이 빛을 발했다.특히 김 대표의 큰딸(25)은 반년 전부터 주방보조로 일하며 가업을 배우고 있다.

■ 직원을 가족처럼

김 대표는 항상 최저임금 이상으로 시급을 책정하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다.인건비 부담으로 아르바이트 인력시장에서 쪼개기 고용이 성행하고 있음에도 일을 잘하는 직원이 있으면 주휴수당을 지불하면서 오랜 시간 고용한다. 권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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