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인터뷰 - 이순원 김유정문학촌장
강릉서 태어나 춘천서 대학나와
전업작가 삶 25년만에 직장생활
취임 첫 실레마을 이야기길 답사
문학촌, 관광 브랜드 상품 구상
시민 참여 작품읽기 모임 등 준비
촌장 업무 외 집필 활동도 한창

▲ 실레마을 이야기길 첫 답사에 나선 이순원 김유정문학촌장
▲ 실레마을 이야기길 첫 답사에 나선 이순원 김유정문학촌장

[강원도민일보 김여진 기자]“걸어야 할 땐 걸어야 하는게 우리삶이야… 뛰고 싶은 걸 참는 것도 지혜인거야”소설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중
강릉 촌장마을 출신 소설가가 춘천 신동면 실레마을에 와서 촌장이 됐다.새해 신임 김유정문학촌장으로 취임한 이순원 소설가.이 촌장은 새해 마을 최고 어르신(촌장)께 합동 도배식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한 강릉 위촌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강릉에서 고등학교(강릉상고·현 제일고)까지 다닌 그는 고향의 희고 푸르며 따뜻한 기억을 소설 속에 녹여왔다.

반면 춘천은 그가 청춘을 보낸 곳이다.강원대 경영학과로 진학,운교동(이 촌장은 ‘축대있는 집’이라고 회상했다)에서 캠퍼스를 오가며 대학생활을 했다.학보사 ‘강대신문’에 시를 출품,당시 학보사에 있었던 이재수 춘천시장 등에게 첫 인상을 남긴 것도 대학시절이다.또 그의 소설을 계기로 익숙한 지명으로 자리잡은 인제 ‘은비령(1996)’ 근처에서 군 생활을 했다.‘아들과 함께 걷는 길(1996)’ 등을 드라마로 만든 ‘겨울연가’의 윤석호PD도 그 무렵 옆 부대에 있었다.여러 모로 ‘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춘천 산 자락으로 돌아 온 소감이 남다를 법 했다.
▲ 실레마을 이야기길 첫 답사에 나선 이순원 김유정문학촌장
▲ 실레마을 이야기길 첫 답사에 나선 이순원 김유정문학촌장


그의 촌장 취임 후 첫 실레마을 이야기길(봄내길 1코스) 답사에 따라나섰다.문학촌 뒷편 금병산 자락 밑 소담한 산길.박지영 학예연구사,최윤식 문화해설사가 동행했다.

이 촌장은 김유정의 숨결이 살아있는 길을 걸으며 “문학촌과 실레마을길을 중심으로 춘천의 ‘문화상품’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초·중·고 교과서에 작품이 실린 작가이자 강릉 바우길 조성을 주도한 ‘길 전문가’답게 숲과 길,문학에 대한 해설이 걸음마다 곁들여져 지루할 틈 없었다.

이 촌장은 코스 초입부터 ‘길’에 대한 철학을 풀어놨다.그는 “바우길이 강릉의 자부심이 된 것은 ‘우리가 걷는 길에 외지 사람들도 끼어서 걷는다’는 생각 덕분”이라면서 “길의 성패는 그 지역 사람들이 얼마나 걷는지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특히 실레마을에 대해 “문학의 무대를 걷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소설가 1명을 테마로 이처럼 만들어진 곳은 흔치 않다”면서 “봄내길도 춘천 사람들이 걸어야 한다.주인의식을 갖고 걷는 길이 있어야 자부심도 생긴다”고 했다.

문학촌의 역할로는 ‘상품개발업’이라는 다소 의외의 단어를 꺼냈다.그는 “문화 향유를 위한 접근로를 만드는 것이 우리 일”이라며 “우리가 만드는 것은 ‘상품’이고,오시는 분들이 향유하는 것이 바로 ‘문화’다.이를 헷갈려서는 안된다”고 구분지었다.때문에 문학촌도 하나의 브랜드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시민들과 함께하는 실레마을 걷기,김유정 및 춘천 배경 작품 읽기 모임 등을 정례화할 생각이다.답사 내내 표지판 시설 등 보완점을 살피며 정확한 고증과 정보 전달에 바짝 신경썼다.그는 강릉에서도 허균·허난설헌에 대한 해설사들의 설명이 과장된 것을 듣고 시청에 별도로 부탁,문화해설사 대상 특강을 자원한 일도 있다.‘문화 향유’의 질은 정확하고 흥미로운 콘텐츠에 기반한 ‘상품개발’ 노력에서 온다는 생각 때문이다.
▲ 실레마을 이야기길 첫 답사에 나선 이순원 김유정문학촌장
▲ 실레마을 이야기길 첫 답사에 나선 이순원 김유정문학촌장


이같은 연장선상에서 또 하나 마주한 숙제는 김유정만의 매력과 최신 트렌드를 접목시킨 전시실 재구성이다.전국 문학관은 물론 산업 전시를 포함한 각종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모을 계획이다.이 촌장은 “전시실 재배치가 고민인데 꼭 문학이 아니더라도 상품 전시장 등을 다양하게 봐야한다”면서 “충분히 잘 공부해야 하므로 당분간 여기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이들을 아울러 추진해야 할 핵심 과제가 도내 최초의 공립문학관 등록이다.규모나 위상 면에서 당위성이 충분하다는게 문학촌 판단이다.김유정 신인문학상 수상자 등 김유정 콘텐츠를 통해 발굴한 문인들과의 지속 교류에도 신경쓸 방침이다.

길 중턱쯤 올라 좋아하는 김유정 작품이 무엇인지 물었다.‘동백꽃’,‘봄봄’ 등이 답으로 돌아왔다.“풋풋하쟎아요.저는 파릇파릇한 연애가 좋아요” 동리문학상을 받은 장편 ‘삿포로의 여인(2016)’을 예로 들며 “제 작품도 ‘연애소설’이라고 얘기합니다”라고 콕 집었다.걷는 내내 나뭇잎과 꽃 이야기를 곁들이던 대화와 맞물리는 답이었다.‘들병이’ 등 당시 시대상황을 드러내는 작품 속 소재들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앞으로 걷기,읽기모임이 만들어지면 대화를 달굴 이야깃거리들이다.

이 촌장에게 정식 출퇴근시간이 있는 ‘직장생활’은 무려 25년만이다.등단 후에도 국책 금융기관 홍보팀에서 근무했던 그는 1995년 사직 후 소설쓰기에 전념,얼마 지나지 않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전업작가의 삶을 이어왔다.촌장으로서의 목표와 작가로서의 꿈이 겹쳐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촌장은 “문학촌을 잘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문인 입장에서는 이 곳에서 가장 좋은 글을 남기는 것도 김유정 선생을 위하고 촌장으로서도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세기의 명작 하나 내놓으려 한다”고 웃었다.

또 “춘천을 무대로 한 좋은 작품을 쓰는 것도 촌장으로 있으면서 이루고 싶은 일”이라고 밝혔다.그는 요즘도 한창 집필 작업 중이다.“여기는 문학촌이쟎아요.좋은 작품을 쓰는 일이 마땅합니다.”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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