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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현의 ‘옛 신문 속 강원도 읽기’] 2. 그해 겨울 어떻게 보냈나 (하)

최근 우리가 기다리던 눈, 6척씩 쌓이고 왕래조차 못했던 날

김여진 beatle@kado.net 2020년 02월 22일 토요일 8 면

태백산 눈축제, 화천 산천어축제,
인제 빙어축제, 홍천 꽁꽁축제….
겨울축제를 기다린 사람은
관광객만이 아니었다.
하얀 눈과 얼음을 도시브랜드에 얹어
1년을 팔아야 되는
강원도 사람들은 더 절실하게
기다렸다.
폭설과 혹한의 날씨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고
얼음이 꽝꽝 얼기를.
그 흔하던 눈은 다 어디로 갔을까?

▲ 박미현 본지 수석기자
예전 강원도 사람들은 비, 불, 눈을 삼재로 여겨 대설주의보에 익숙하다. 연일 휘몰아치는 굵은 눈발을 1983년 최승호의 첫 시집 표제작 ‘대설주의보’는 다투듯 몰려와 시대와 사회를 백색의 계엄령으로 얼려놓은 눈보라 군단으로 표상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황성신문 1907년 4월 1일자 2면에 실린 ‘영동설재’기사는 음력 1월 초순 강원도 영동지역의 대설 피해를 보도하고 있다. 큰 눈이 연일 내려 평지에 쌓인 눈이 5, 6척으로 150~180㎝에 달하고, 집은 처마가 없을 정도로 매몰돼 평지와 같아졌다. 노인들은 ‘생전 처음 보는 큰 눈인데 한줌의 눈덩어리가 스스로 산 정상에서 일어나기 시작해 산 아래로 떨어지는데 내려갈수록 커져 끝에 와서는 크기가 산과 같아진다’고 기사에 설명돼있다. 양양군 협곡에서는 매몰된 사망자가 30여명이고 소와 말이 압사되는 피해상황을 전하고 있다.

▲ 1907년 4월 1일자 황성신문의 ‘영동설재’ 기사.

1907년 4월 큰 눈, 양양 협곡 매몰 사망자 발생
1923년 1월에도 적설 5척 교통마비 우편물 우회


1923년 1월 22일부터 26일까지 강릉 양양 삼척 등 동해안 지역에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눈이 내려 2m가까이 눈이 쌓여 교통 두절은 물론 왕래조차 할 수 없어 적막세계라고 보도됐다.(매일신보 1923년 1월 31일자) 1917, 1922, 1936년은 살인적이라고 할 정도로 혹한을 견뎠다.

중외일보 1930년 1월 11일자 4면 ‘적설 5척여로 우편물 우회 지연’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원주를 거쳐 강릉방면으로 향하는 자동차 우편선로가 대관령 부근 폭설로 교통이 두절돼 부득이 함경남도 원산을 거쳐 우회하는 기차선로로 보내고 있다고. 원산에서 강릉으로 가는 바다 날씨가 사나워 선박운항이 결항되거나 늦어져 이 마저도 원활치 않다고 보도하고 있다. 때문에 서울에서 경상북도 포항 철도편으로 보낸 뒤 다시 자동차로 강릉으로 전달하는가 하면, 우편원 1명에 눈 치우는 인력 2명을 딸려 보내 일일이 대관령 눈을 치우며 평창군 대화까지는 뚫었으나 대화에서 강릉까지는 자동차편 개통 가능성이 없다고 상황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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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4월 1일자 황성신문의 ‘영동설재’ 기사.

1924년 2월 1일자 매일신보 횡성 평창서 호랑이 사냥 기사
겨울 농한기 야학 활발 어려운 형편 학생 무료 교육 미담 소개

강원도의 겨울은 사냥철이다. 1924년 ‘20세기 무용담’이라고 해 횡성군 읍내에서 목수영업을 하는 송산정(29)이라는 포수가 횡성군과 평창군 경계 깊은 산중에서 암컷 호랑이를 잡아 1월 31일 서울 남대문통에서 선보인 사실이 매일신보 1924년 2월 1일자 3면에 호랑이와 포수 사진과 함께 실렸다. 겨울만 되면 곰사냥에 나섰던 포수는 1924년 1월 21, 22일에 걸쳐 백설 위의 발자욱을 보고 호랑이를 쫓았는데 치명적인 총상을 입고 잡힌 호랑이는 신장 2m46㎝, 가슴 주위1m14㎝, 체중 168㎏나 되는 대호였다.

겨울철은 농한기여서 야학이 이뤄지는 기회였다. 원주 판부면 금대서당에서는 1926년 교원 2명이 경비를 들여 형편이 어려운 집 자녀 25명을 모집해 무료로 겨울에만 초등학교 1, 2학년 수준의 공부를 시키고 있어 칭송이 자자하다는 미담이 소개됐다.

반면 강원도청에서는 중일전쟁 발발하던 1937년 물자 수탈을 목적으로 ‘입연직경기회’를 창설했다.겨울 농한기 동안 잉여노력을 활용한다며 남자는 물론 여자, 어린이까지 참여하는 가마니와 멍석짜기대회 일정과 수상명단을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실어 선전했다.농한기 부업거리는 가정에 도움이 되지못하고 국방헌금, 보국저금이라고 해 일본전쟁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강원도내를 4개 구역으로 나눠 개최되는 제3회 입연직경기회 일정이 1939년 12월 6일자 3면에 실렸다. <박미현 본지 수석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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