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합니까?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얼마전 영국의 신경제학재단(NEF)이 세계 178개국 국민의 행복지수를 측정한 결과, 우리나라는 102등을 차지했다. 또 서울복지재단과 대한민국 학술원이 한 조사에서는 서울시민의 행복지수는 세계 10대 도시 중에서 꼴찌로 나타났다. 경제적 부는 이루었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우리, 인간의 욕망이 상품으로 환유될 수 있지만 그것으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회 양극화, 이기주의 팽배, 규범질서의 난맥, 도덕적 해이 등 사회적 갈등과 반목을 유발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결핍된 욕망의 주체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우리가 욕망에 대해서 조금만 고민하는 힘을 발휘한다면 그렇게 어렵지 만은 않은 듯하다. “욕망의 대상이 허상임을 인식할 때 그것에서 벗어 날 수 있고, 자신의 욕망 때문에 타인이 힘들어 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좀더 쉽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욕망 바꾸기이다. 이기적 욕망을 이타적 욕망으로 바꿔보자. 남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남을 돕는 사람도 있다. 인간에게는 이기적 욕망과 이타적 욕망이 공존한다. 우리에게 이기적 욕망은 넘칠 만큼 충분하니 남을 돕고 이해하는 이타적 욕망으로 바꿔보자.
자기중심적 욕망을 공동체적 욕망으로 바꿔보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공동체적 삶을 벗어난 인간은 원숭이보다도 미약한 존재이다. 혼자 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가정이 나를 키웠고 우리 지역이 나를 지원했고 우리 국가가 나를 지켜주었다. 이제 지역에 봉사하고 규범질서를 존중하는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적 욕망으로 보답하자. 상품화된 욕망을 인간관계 욕망으로 바꿔보자. 인간의 신성한 노동이 상품화되었다. 바꿔 말하면 인간을 노예처럼 돈을 주고 산다는 얘기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이처럼 돈의 위력이 강력한 세상에 살고 있다. 경제적 부를 이루었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근본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생산되는 상품보다 생산하는 사람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마을, 직장 그리고 우리가 사는 모든 공동체 영역에서 든든한 인간관계 네트워크를 구축하자. 그러면 그동안 존재가치를 몰랐던 나의 이웃이 삶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