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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禧年>정신과 상생의 우리문화

양세훈 2009년 06월 12일 금요일
   
▲ 양세훈

화천 원천감리교회 담임목사
희년(禧年)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특별한 시간개념으로서 50년마다 한번씩 인간과 자연에게 완전한 자유와 안식을 주는 해를 말한다. 희년이 되면 사람의 경우, 노예살이 하던 이들을 본래 자유민으로 해방시키고, 모든 채무를 탕감해 주며 토지 소유를 본래 상태로 되돌린다. 그리고 자연, 특히 땅의 경우, 경작을 1년간 멈춤으로써 땅도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창세기에 나오는 ‘땅’은 무생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를 돕는 조력자로서 생물체이다. 모든 식물이 이 땅을 어머니 삼아 살아나고 있으며 모든 동물들도 땅의 소산을 기초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생물체인 땅도 쉬어야 한다. 땅이 쉰다는 것은 곧 생물들이 쉰다는 말과 동일하다 하겠다. 이를 요즘 생태학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땅은 이루 셀 수 없는 미생물들과 무기질의 연합이다. 땅이 생물이라고 하는 것은 곧 그것이 생물로 이루어진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땅이 쉰다는 것은 곧 그 속에 사는 미생물도 쉰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안식년, 희년에 땅을 안식하게 한다는 개념은 참으로 생태 존중의 개념이며 상생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개념은 우리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인간 중심의 자연 인식이 아니라, 자연생명 자체에 가치를 두는, 생명·생태주의를 견지해왔다. 그런 전통문화 중의 하나가 바로 ‘고수레’ 풍속이다. 새참이나 들밥을 먹을 때 옛 사람들은 숟가락을 들기 전에 먼저 음식을 조금 떼어 “고수레”를 외치며 멀리 던졌다. 여기서 ‘고수레’는 지방에 따라 ‘고시래’, ‘고시레’라고도 하는데 이는 음식을 던지면서 하는 소리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고, 음식을 던지면서 ‘고수레’라고 말을 하는 행위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고수레의 근원적 설화는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그 근원은 들에 있는 생명들과 함께 무엇이든 나누어 먹고자 했던 생명 사랑에 있다. 따라서 고수레는 자연에서 거둔 것들을 자연생명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상생의 의미가 물씬 풍기는 미풍양속이다.

이런 상생의 정신은 우리 조상들의 삶 속속들이 녹아 있다. 예를 들어 ‘경칩날 개구리를 죽이면 내생에 눈알 없는 개구리로 태어난다’고 하여 겨우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봄에 지나치게 개구리를 남획하는 것을 방지했고, ‘냇물에 오줌을 누면 고추 끝이 부어서 감자고추가 된다’고 하여 민물에 터를 꾸려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의 생태에 대해서 관심을 쏟았다.

또한 옛 어머니들은 음식을 하거나 부엌을 치우면서 남은 허드렛물이 너무 뜨거울 경우, 땅이나 하수구에 그냥 내버리지 않고 한 쪽에 모아두어 꼭 식혀서 버림으로써 다른 생물들이 그로 인해 해를 입지 않도록 배려했다.

이런 문화는 요즘 강조되고 있는 생태학적인 환경운동에서 더 없이 강조되는 ‘인간중심이 아닌, 생명 중심적 사고’라 할 수 있고, 그것이 곧 희년의 정신에서 땅의 안식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으며’라고 입술로만 고백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철따라 피는 꽃의 내음을 맡고, 잎새를 매만지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철따라 깃들러 오는 새들의 이름을 알아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창조신앙의 진정한 고백이요, 희년정신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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