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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위상

안석환 2010년 12월 17일 금요일
   
▲ 안석환

원주대광교회 목사
성탄의 계절이다.

우리들이 한 해 동안 살아오면서 내뱉은 말에 색깔이 있다면, 2010년은 참 다채로운 그림이 될 것 같다. 천안함 사건, 6·2지방선거, 광저우아시안게임, G20정상회의, 연평도 사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의 여·야의 극한 대립, 사태의 본질보다 몇 배나 더 현란한 수사의 말들의 홍수, 어느 하나도 짙은 원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색깔은 없는 듯하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말은 의사전달의 통로다. 말들의 결이 너무 경색되면 의사전달이 불가능하고, 너무 이완되면 본래의 뜻이 분명치 않을 수도 있다. 구체적이고 단순한 한 마디,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참뜻은 그것만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말에 권위와 믿음을 더하기 위하여 국가와 민족을 끌어대고,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고, 하늘을 두고 맹세까지 하면서 정작 상대방을 설득하기 보다는 구경꾼들에게 멋지게 보이려는 수사에 능한 것 같다. 그러는 사이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왜곡되고 부풀려진 말 때문에 또 다른 사태를 낳고, 다시 증폭된 말들은 또 다른 사태로의 진입을 획책하는 악순환만 거듭된다. 진실은 둘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모든 사태에서 정 반대의 말들까지 풍성했던 게 현실이다.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헤아리기 전에 말이 갖는 허위의 옷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인가 성탄절은 종교적 함의를 희석하면서 온 인류의 축제가 되었다. 사랑과 평화, 나눔과 친교의 구호들만큼 사람들의 몸짓도 말들도 화려한 계절이다. 그런데 정작 기뻐하고 즐겨야 할 이 땅의 서민들은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말들 때문이다. 화합과 축복의 세상보다는 대립과 저주로 점철될 세상을 예감하는 말들의 혼탁 때문이다. 우리들의 말에는 선언적 의미가 담겨 있다. 현재의 소망과 미래의 실체가 그 선언적 내용이 된다는 말이다.

지금부터 우리들의 말은 좀 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었으면 싶다. 어려운 시대를 함께 걸어가는 동행자로서 좀 더 부드럽고 더욱 따뜻한 말들을 주고받았으면 한다. 우선 정치인들이나 사회 지도자의 말에서부터 그 독기를 제거하길 바란다. 그 근엄하고 비장한 얼굴 뒤에 비치는 이기와 탐욕을 읽어내지 못할 국민은 이제 이 땅에 한 사람도 없다. 국가와 민족을 말하는 그 행간에 담긴 개인의 영달과 득표를 향한 이기적 은유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오히려 모르고 있는 쪽은, 자신의 내심이 간파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아직도 화려한 치장으로 말들을 왜곡하고 있는 자신들이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창조주이면서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의 말씀이다. 2010년의 성탄을 맞으면서 이 말씀이 더욱 절실한 것은, 이 땅은 이미 옳은 것을 옳다 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 할 판단력조차 잃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젠 말에게 말의 위상에 걸맞는 권위를 되돌려 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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