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 한 복판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루에 12~18시간 섬유공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던 여성들이었다.견디다 못한 그녀들이 ‘빵과 장미’를 달라며 거리 행진에 나선 것인데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했단다.그 후 1975년 UN에서는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고 매년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170여개 나라에서 이날을 특별히 기념하고 있다.
109돌을 맞이한 올해의 캠페인 주제가 멋지다.‘변화를 위해 대담하라.(Be bold for change.)’그런데 불현 듯 신사임당이 떠오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왜일까?
언제인가 우연히 읽은 역사책에서 신사임당에 대한 전혀 새로운 사실을 만나 놀란 적이 있다.현모양처(賢母良妻)로만 알았던 그 분이 사실은 전혀 딴판이란다.시부모 잘 모시고 남편에게는 순종하며 아이들을 알뜰살뜰 보살피는 분일 줄 알았는데 열아홉에 결혼을 하고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어 오랜 세월 친정을 떠나지 않았고 시부모 모시기를 회피했으며 과거시험 공부를 포기하고 아내가 그리워 돌아온 남편에게는 머리카락을 자르며 비구니가 되겠다고 협박까지 했단다. 사임당은 출산과 육아 기간에도 그림에서 손을 놓지 않았으며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독서에 힘썼다.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집안 대소사를 챙기며 나름 일곱 아이를 키워냈고 할 말 다했으니 독립적이고 당당한 여자였다.
109년 전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장미’를 외치던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금은 노동환경이 나아졌고 사임당이 21세기를 살았다면 그 삶은 더욱 풍성했으리라.그 분의 삶을 바탕으로 연속극이 방영되고 비록 허구일지라도 우리가 알 던 사임당과는 달리 좀 더 자유분방한 그 분의 모습이 조금도 낯설지 않음은 그것이 시대정신에 부합하기 때문이다.백두용·강원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여성보호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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