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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면류관

이성근 2017년 09월 06일 수요일
▲ 이성근   성신여대 교수
▲ 이성근
성신여대 교수
나폴레옹은 흔히 ‘불가능’에 도전해온 전쟁영웅으로 한국에게 알려져 있다.베토벤 ‘영웅’ 교향곡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혁명세력인 프랑스 자코뱅당의 열렬한 지지자로 귀족중심의 프랑스 왕정을 혐오했다.그의 의식을 지배한 것은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된 불평등한 프랑스 왕정 개혁이었다.그의 생각은 유럽헌법의 근간이 되는 ‘나폴레옹 법전’으로 이어져 교육시스템을 정비하고 프랑스 사람들이 예측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1804년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에 즉위하며 자신을 지탱해 온 정치철학을 무너뜨리게 됐고,그를 모델로 ‘영웅’을 작곡한 베토벤도 깊이 실망했다.그가 그토록 신뢰했던 공화정 체제에 대한 배신을 하면서 나폴레옹의 전성기도 저물어갔다.엘바 섬 유배 이후 재기할 기회가 있었던 나폴레옹이 다시 실패한 이유는 ‘자신에 대한 배신’이었다.시민중심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프랑스 대혁명기 시민들의 열망에 대한 배신이랄까.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프랑스 사회가 자유주의 공화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상황에서 나폴레옹의 재기는 이전의 또 다른 부르봉 왕조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신기하게도 권력은 가속성(加速性)을 가지고 있다.집중화된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혁명과 변화의 힘도 종국에는 권력의 소유에 집착하게 된다.그리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무리한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변화란 과거의 부정과 파괴가 아니라 과거를 기반으로 하는 미래의 수용이어야 하는데 말이다.나폴레옹이 황제의 면류관을 교황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머리에 얹었다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니다.황제가 되었다는 것,그 자체가 하나의 자기부정인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역사로부터 배운다고 한다.또 지도자가 된 사람들은 자신의 리더십이 역사적 산물이며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한다.이때 질문이 생긴다.‘정말 당신은 역사로부터 배웠는가’이다.또 반대로 ‘당신은 정말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묻고 싶다.우리가 처한 과거 시스템에 대한 회의는 권력의 독점에서 비롯됐다고 보인다.‘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과거의 속설을 신앙처럼 믿어서인지,이전의 시스템은 권력 독점의 가속성을 여실히 보여줬다.그 여파로 사회의 모든 조직이 유사한 경험을 가져왔다.

최근의 변화는 그러한 가속성에 대한 하나의 제어다.방향과 시스템이 정말 맞는가에 대한 브레이크 정도인 것이다.그러나 새로운 변화는 주목해야할 것이 있다.자신이 스스로의 가속성을 제어해야한다는 사실이다.사람들은 정권의 10년 주기설과 같은 최근의 정치현상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 앞으로 정권은 매번 교체될 수 있다고 본다.그 이유는 정보의 분점화 때문이다.정보는 누구나 생산할 수 있으며,그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돼 있다.‘델피의 신탁’처럼 소수의 사제가 정보를 독점하고 그 정보에 기반한 판단을 통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시대는 종말했다.현재와 같은 불분명한 카테고리의 정치이념이나,제도권 교육과 비제도권 교육과 같이 경계가 모호한 카테고리는 사라질지 모른다.기술은 0과 1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산적 디지털의 시대지만 사회는 아날로그처럼 연속적인 방식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유형의 리더이든,영웅이 되고 또 저자거리의 부랑아가 되는 것은 순간이다.따라서 리더가 가야할 길은 자신의 철학에 대한 신념을 지키고 실행하는 것이지만 나폴레옹처럼 스스로 면류관을 얹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그것이 대혁명기의 프랑스 사회와 지금의 우리사회가 갖는 공통점이자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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