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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파와 대마, 그리고…

<明波> <大馬>

하창수 2018년 04월 24일 화요일
▲ 하창수 소설가
▲ 하창수 소설가
28년 전,그러니까 1989년 가을,소설가로 등단하고 3년차를 지나고 있던 나는 한 문예지로부터 장편소설을 써달라는 원고청탁을 받았다.당시로선 파격적인,연재나 분재가 아니라 한꺼번에 모두 싣는 전재(全載)였다.신예작가에겐 천재일우의 기회이기도 했지만,그만큼 큰 부담인 것도 당연했다.제안을 받고 과장을 좀 보태면 일주일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물론 ‘뭘 쓸 것인가?’ 때문이었다.장편은 아직 써보지 못한 장르였는데 일주일을 그야말로 전전반측하던 나는 드디어 결심을 했다.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소설,나로 하여금 소설가의 길을 가도록 만든 것-바로 ‘군대 얘기’를 쓰자는 거였다.그렇게 이듬해 봄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이란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되는 첫 장편소설은 처음으로 문학상을 안겨주기도 한,고마운 선물이 된다.

화천과 철원의 전방지역에서 27개월을 보낸 경험을 장편소설로 쓰겠다 생각하고 내가 맨 처음 한 건 배낭을 꾸리는 일이었다.제대를 하고 5년 밖에 지나지 않은 때라 기억엔 생생했지만,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그래야 할 것 같았다.일종의 제의(祭儀)처럼.

보름을 계획하고 먼저 떠난 곳은 당시 친한 후배가 군생활을 하고 있던 고성의 명파리(明波里)였다.기차로 강릉으로 갈 때는 해가 중천에 있었는데 시외버스로 고성에 도착했을 땐 가을해가 진 뒤였다.소금기 가득한 갯내와 어둠을 건너오는 파도소리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부대로 찾아가 면회신청을 했지만 민통선 안쪽으로 훈련을 떠난 후배를 만날 순 없었다.덕분에 후배가 부대로 복귀할 때까지 ‘통일전망대’에도 여러 번 가고 동네주민들을 만나 취재를 하면서 닷새를 보냈다.그때 만난 사람들 중에 유난히 기억에 도드라지는 두 분이 있다.내가 소설가라는 걸 알고 사무실로 데려가 따뜻한 차까지 타주며 얘기를 나누었던 40대 중반의 전망대 관리소장님과 고향마을이 군사분계선 안쪽이 되어버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한을 가진 70대 고령의 농부 - 정재수(鄭在守)와 이재영(李載榮)이라는 두 분의 이름이 적힌 당시의 내 수첩엔 “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 자식들 데리고 고향의 산소에 엎어져 마음껏 통곡하고 싶다”는 이 노인의 얘기가 적혀 있다.‘통일’과 ‘통곡’에 굵은 밑줄이 그어진 채로.

훈련에서 돌아온 후배와 하룻밤을 보내고 동부전선을 떠난 나의 두 번째 여정은 한국전쟁의 최대격전지 중 한 곳이었던 백마고지 쪽이었다.철원군 철원읍 대마리-그곳으로 간 이유는 내가 쓰려던 소설의 주요무대 중 하나인,‘대북심리전’을 위해 조성된 이른바 ‘민통선마을’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내 청춘의 쓰라린 추억들이 묻힌 곳은 근남면 마현리였지만 그곳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당시로선 없었다.신문사에 있던 선배 덕분에 어렵게 주재기자와 동행하는 조건으로 대마리로 간 내가 들은 건 지뢰밭에 다름없는 농토를 일구던 정착초기의 힘겨움과 ‘지척에 둔’ 고향 이야기였다.소주잔을 든 채로 “이북에 있는 자식들도 마이 보고접지만,죽기 전에 통일만 되믄 내사 아무 한도 없어”라고 하던 초로의 주름진 이마가 눈에 선하다.내 수첩엔 이동윤(李東倫)이라는 그의 이름이,63세라는 그의 나이가,평안남도 안주(安州)라는 그의 고향이,눈물처럼 적혀 있다.살아 계시다면 구순을 넘겼을 텐데,통일은 아직이다.

명파리의 푸른 바다와 대마리의 누렇게 익어가던 논은 어제처럼 또렷하다.또렷해서 지나가버린 28년이란 세월이 거짓말 같지만,거짓말이 아니어서 아프다.그때 만난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그들의 이루지 못한 소망을 생각하면 죄스러움부터 인다.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동안 내가 한 게 무엇인지,한반도가 반으로 잘려나가고 70년 동안 우리가 무엇을 한 건지-그러고도 희망이나 기쁨을 얘기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이제 3일 뒤면 남과 북의 정상들이 다시 만난다.회한과 슬픔 대신 희망과 기쁨을 얘기할 수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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