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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마당] 노년의 서글픔

김성일 2018년 10월 01일 월요일
▲ 김성일 전 강릉원주대 교수
▲ 김성일 전 강릉원주대 교수
요즘에는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없다.양보를 권유하는 차내 방송은 들은 척 하지 않고 노약자석 앞에 기대선 노인의 피로한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는다.지하철에서도 경로석 아닌 곳에서는 자리 양보를 기대하기 어렵다.대가족 시절에는 부모가 연로한 조부모를 보살피는 것을 보면서 자녀는 부모와 노인에 대한 공경을 자연스럽게 배웠다.그러나 근래에는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가정은 거의 없고 과보호로 인한 자녀의 이기심 증가로 책임이나 의무보다는 자유나 권리를 앞세우는 사회풍조와 잘못된 평등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14%인 노인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로 취업전선에서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세대간 위화감도 고조되고 있다.그러나 노인들은 대부분 평생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일하는 자녀들을 위해 손주들을 돌보고 있으며 사회를 위해서도 애써왔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그들도 한 때는 유능하고 날렵한 사람들이었고 지금의 변한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게다가 정보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소외감과 그로 인한 무력감 때문에 때로는 아이처럼 쉽게 화를 내며 완고한 모습을 보이는 지도 모른다.늙으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짐이 될 뿐이라는 사회적 인식은 그들의 자격지심을 더욱 부추긴다.

누구나 오래 서 있으면 앉고 싶지만 노약자들은 더 힘들다.그들에게는 서있는 것이 오히려 운동이 된다고도 하지만 체력과 기능이 약화되어 길을 횡단하면서도 꾸물거리고 다른 사람들의 얘기도 빨리 알아듣지 못한다.사람들은 차 내에서 자신의 부모나 연로한 친지가 옆에 서있다면 분명히 자리를 양보하겠지만 낯선 노인이기 때문에 무심하게 여길지 모른다.노약자를 위한 배려는 익명과 경쟁 분위기가 팽배한 대도시보다 소수의 이웃들이 친숙하게 지내는 시골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버스나 지하철에서 서 있는 노인은 우리 부모의 모습이고 우리 미래의 자화상이기도 하다.실감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대부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물론 많은 노인들이 나이를 벼슬로 여기며 경로우대를 당연시하고 양보를 강요하거나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상대방이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고,고마울 때는 그 표시를 해야 당연하며 자신보다 더 허약한 처지의 사람을 배려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을 솔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젊은 세대는 노인들의 상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 시절을 겪어본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이해하는데 보다 유리한 처지에 있다.다수가 노인에게 무관심하다고 대세에 편승하려들면 그들의 무지나 이기심에 휩쓸려가는 것이다.미덕과 예의를 지키는 사람들이 소수라 해도 그들의 행동은 본받아야 한다.과거에는 당연한 행동이 근래에는 칭송받는 경우로 변모되고 있어 씁쓸한 감마저 든다.노약자석을 구분하지 않아도 배려와 양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성숙한 사회로 발전되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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