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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칼럼] ‘임계역(臨溪驛)’과 사통팔달

김상수 2018년 10월 23일 화요일
▲ 김상수 논설실장
▲ 김상수 논설실장
정선이라고 하면 오지 중의 오지로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사람이 사는 데는 그곳이 어디든 길이 있고 사람과 물자가 오가고 문화와 경제가 형성된다.지금은 길이 좋아져 오히려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렵다.그 가운데 임계면(臨溪面)도 벽지로 알려져 있는데,이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지리적으로는 강릉 동해 삼척에 인접한 정선의 동북부다.그러나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운영하던 역원(驛院)이 있을 정도로 교통의 요충이었다.

신라 때는 명주군에,고려 때는 강릉군에 속했던 데서 알 수 있듯 경제·생활권이 영동지방에 중첩돼 독특한 정서와 문화를 형성한다.조선 숙종 때 공조참의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증직된 이자 선생이 낙향해 만년을 보낸 곳이고 아직 그 후손이 터전을 지킨다.당시 지은 수고당(守孤堂)과 고택(古宅),구미정(九美亭)은 강원도의 보물이다.그 후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이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다.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최순실의 전 남편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 정윤회가 이곳에서 났다.그의 조부와 삼촌 등 일가가 읍내에 살았고,의원(醫院)을 열기도 했는데 낡은 그 가옥이 그대로 남아있다.참여정부 초반 검사와의 대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설전을 벌였던 전 인천지검 김영종 검사가 이곳 출신이다.작고한 그의 부친이 면장을 지냈다.중앙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의정부지법으로 옮긴 함종식 판사,고성균 전 육사교장,손계천·원경환 전 강원경찰청장이 이곳에서 났다.한때 기적의 항암제 ‘천지산(天地散)’ 논란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려놓았던 배일주가 이곳 사람이다.

이곳을 지나야 내륙에서 동해안으로,동해안에서 내륙으로 갈 수 있다.강릉과 태백,정선과 동해를 잇는 십자로(十字路)에 임계면 소재지가 있다.5일장이 이어지는 것도 이런 지리 때문이다.지금은 사통팔달 전통시장으로 재탄생해 명성을 잇는다.5·10일 전(廛)을 벌이는 임계 장은 진부,대화 장과 함께 강원도 3대 5일장으로 꼽혔다.지금은 사라졌지만 임계대교 하천 부지에 큰 우시장이 섰는데 열기가 대단했다.

조선 때 문신 어세겸(魚世謙·1430∼1500)이 정선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에 하룻밤을 묶으면서 ‘임계역(臨溪驛)’이라는 한시를 남겼다.“시상이 떠올라 우연히 창문에 썼더니(得句偶書窓)/종이가 찢어지며 시도 따라 찢어지네.(紙破詩亦破)/좋은 시라면 사람들이 꼭 전할 테고(好詩人必傳)/나쁜 시라면 사람들이 꼭 침 뱉으리.(惡詩人必唾)/시를 전한다면 찢어진들 무슨 상관이고(人傳破何傷)/침을 뱉는다면 찢어져도 괜찮겠지.(人唾破亦可)/한바탕 웃고서 말 타고 떠나노니(一笑騎馬歸)/천년 세월 흐른 뒤에 그 누가 나를 알랴.(千載誰知我)”

세월은 쉬는 법이 없고 그로부터 500여 년이 흘렀다.그 격절을 넘어 시정(詩情)이 오롯이 전한다.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지금이 바로 그가 이곳을 지났을 무렵이다.한때 댐 건설이 추진되고 수몰지구로 지정돼 하마 트면 통째로 수장될 뻔했다.고시가 풀리면서 ‘정지화면’이 다시 돌아가고 오늘 여기까지 왔다.많은 게 변해도 터전의 골격과 자연을 벗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지(心地)야 어찌 달라질 수 있으랴.예전엔 옥수수 감자 무 배추를 많이 심었는데,요즘은 사과의 고장으로 변해간다.지난 주말에는 지난해에 이어 큰 사과축제가 열렸다.

지금 사과농사를 짓는 이들은 마음껏 사과를 먹지 못한 세대다.과일 전을 지나며 마른침을 삼켰던 아릿한 추억 하나쯤 안고 산다.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된다지만 이곳이 사과주산지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옛 시인이 자신의 시심과 필적을 누가 알아주랴,하면서 보냈을 그 하룻밤의 스산한 정서를 새삼 가늠해보게 된다.다시 500년 뒤에 오는 누군가가 있어 이 시대를 살다간 이곳사람들은 기억하리라.필자가 지금 500년 전 어세겸의 ‘임계역’에 흠뻑 빠져든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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