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최고령 비롯 160여명 참석
개교 105주년 맞아 옛 추억 나눠
총동문회 마음의 고향 역할 톡톡

▲ 내평초등학교 총동문회 행사가 지난 3일 신북농협 지하 행사장에서 4년 만에 열렸다. 내평초는 소양강댐으로 수몰된 학교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 내평초등학교 총동문회 행사가 지난 3일 신북농협 지하 행사장에서 4년 만에 열렸다. 내평초는 소양강댐으로 수몰된 학교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 “여기가 고향” 4년만의 내평초 총동문회

추억이 담긴 고향 땅과 학교가 물에 잠긴 지 50년, 내평초 동문들에게 남아있는 고향의 조각은 사람이 유일하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고향의 기억을 공유하는 내평초 총동문회 행사는 더욱 의미가 크다. 지난 3일 신북농협에서 열린 내평초 총동문회 현장을 찾았다.

행사장은 오랜만에 선·후배, 그리고 친구를 만나기 위한 내평초 출신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초 주최 측이 예상한 참석 인원은 80명이었으나 이날 동문회를 찾은 인원은 두 배인 160명을 상회해 앉을 자리가 부족했다.

행사를 진행한 이수자(66) 사무국장은 “4년 만에 행사를 열다 보니 너무 설레어 잠도 제대로 못자고 왔다”라며 “잠시 눈을 감고 집에서 학교까지 가던 길을 생각해보자”면서 회상에 잠겼다. 북산면사무소, 건너편에 있던 우체국…. 좀 더 나와 보이던 양조장, 사진관, 공용 우물터, 쌀가게, 약국까지. 학교가 사라지고 50년이 흘렀지만 그들에게는 마치 어제처럼 생생했다. 김재호 신북농협 조합장의 고향집은 하도 길어 ‘기차집’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엄기석(71) 내평초 총동문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4년 만에 열렸다. 그 사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동문들이 있어 안타깝다”면서 “우리는 외롭지 않기 위해 행사에 나와야 한다. 망향비, 실향비 하나 없이 지낸 기간이 반세기다. 올해는 소양강댐이 수몰된 지 50주년이다. 지금까지 학교가 있었다면 올해 99회 졸업생을 배출했을 것이고, 개교된 지 105주년이 되는 해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 내평초는 동문이 매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력이 남아있는 한 계속 만나자”라고 말했다. 내평초 동문들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올 가을에는 버스를 빌려 나들이를 갈 생각이다.

▲ (사진 왼쪽부터) 최고 선배로 참석한 최복순(94·18회)씨, 최고령 참석자인 임종현(95·20회)씨와 부인 홍종순(89·23회)씨, 선·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춘천을 찾은 민인식(79·31회)씨.
▲ (사진 왼쪽부터) 최고 선배로 참석한 최복순(94·18회)씨, 최고령 참석자인 임종현(95·20회)씨와 부인 홍종순(89·23회)씨, 선·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춘천을 찾은 민인식(79·31회)씨.

최양대(78) 명예회장은 흩어졌던 동문들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8년 총동문회를 조직해 다시금 고향을 잃은 이들에게 ‘마음의 고향’을 선물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 나온 마지막 기수도 환갑이 넘었다. 내평초는 서서히, 오래오래, 익어가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만나자”라며 덕담을 전했다.

동문회 행사에는 최고 선배인 18회 최복순(94)씨와 최고령자인 임종현(95·20회)씨를 시작으로 45회까지 160여 명이 참석했다. 최고령자인 임종현씨는 홍종순(89·23회)씨와 부부다. 임종현씨의 여동생이 홍종순씨와 동창인데, 둘을 이어줘 결혼한 게 어느덧 65년이 지났다고 한다. 홍종순씨는 “내평초 출신 둘이 결혼한 경우는 우리밖에 없다”라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민인식(79·31회)씨는 이날 행사를 위해 오랜만에 춘천을 찾았다. 소양강댐이 지어질 무렵 고향을 떠나 가족 모두가 서울로 이사를 간 민 씨에게 남아있는 사람이 고향의 전부다. 그는 “오랜만에 선후배들과 만나니 무척 반갑다. 이들을 보니 그리운 고향 생각이 난다”라고 했다.

민병희 전 교육감도 총동문회 행사에 참석했다. 민 전 교육감이 학생이던 시절 최양대 총동문회 명예회장이 그를 업고 다녔다고 한다. 민 전 교육감은 “학교를 다니던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면서 “나에게는 이곳이 고향이다. 물질적인 고향은 없어졌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고향”이라 말했다.

내평초는 일제강점기던 지난 1918년 문을 열고 1924년 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소양강댐 건설로 인해 1970년 2월 졸업한 43회가 마지막으로 내평리에서 졸업했다. 44회는 면사무소에서 졸업했고, 이후 45회부터 50회까지 졸업한 인원은 48명에 불과하다. 1977년 2월 16일 50회가 졸업한 뒤 폐교됐다. 1918년부터 폐교되기까지 내평초가 배출한 졸업생은 2000여 명에 달한다.

정민엽 jmy4096@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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